몽골 마지막 황제 어의는 한국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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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몽골 마지막 황제의 어의(御醫)로 활약하며 몸소 인술을 실천한 독립운동가 이태준(李泰俊.1883~1921)선생의 발자취를 찾기 위한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연세대 의대는 다음달 8일 몽골 울란바토르 대통령궁 부근에서 한동관(韓東觀)의료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李선생 기념공원 개원식과 기념비 제막식을 갖는다고 27일 밝혔다.

이어 몽골 정부의 도움을 받아 연세대 의대 전신인 세브란스의학교의 2회 졸업생인 李선생의 묘소 찾기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연세대 의대의 한 관계자는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 열정적으로 살다 가신 李선생이 잠든 곳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후손된 사람들의 수치라 생각, 지난해부터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고 말했다.

1883년 경남 함안 출생인 李선생은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 1911년 졸업했다.

李선생은 의학교 재직 중인 1910년 고문 후유증으로 세브란스에 입원한 안창호(安昌浩)선생을 치료하다 그의 민족애에 감화받아 독립운동을 결심했다.

1912년 李선생은 사촌 처남인 독립운동가 김규식(金奎植)선생의 권유로 울란바토르에서 항일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金선생은 몽골에 비밀 장교양성소를 설립하고 항일 혁명단체를 조직할 계획이었다.

李선생은 독립운동이 주 목적이었지만 몽골인들이 처한 의료 현실에 눈감을 수 없었다.

동의의국(同義醫局)이란 병원을 개업, 치료에 헌신을 다한 李선생은 몽골에서 '신의(神醫)' 로 떠받들어지면서 마지막 황제인 보그드 칸의 주치의가 됐다. 또 1919년에는 몽골 최고 훈장인 '에르테닌오치르' 를 받았다.

李선생은 이와 함께 의열단에 가입,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고 헝가리 출신 폭탄제조 기술자 마자르를 섭외, 항일운동에 쓰일 무기를 만들게 했다.

하지만 李선생은 1921년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러시아 장군인 운게른 스테른베르그 군대에 붙잡혀 38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연세대 의대가 李선생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8년 4월 학내에서 개최한 '한국 최초 의사 배출 90주년 기념 강연회' 를 통해서다.

당시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반병률(潘炳律)교수는 '세브란스와 독립운동' 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李선생의 업적을 알렸다.

학교측은 李선생에 대한 기록을 살펴봤지만 묘소는 물론 사진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울란바토르에 있는 연세친선병원 등을 통해 지난해부터 몽골 정부기록보존소를 뒤지고 국영TV에 광고방송도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몽골 정부는 지난 3월 울란바토르 몽골 대통령궁 인근 부지 2천여평을 기념공원 부지로 내놓았다.

학교측은 앞으로 2회 졸업생 6명이 함께 찍은 졸업사진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맡기고, 다른 졸업생 후손의 증언과 보관 사진을 토대로 李선생의 얼굴을 가려낼 계획이다.

반병률 교수는 "李선생은 요즘처럼 기능에 안주하는 의사가 아닌, 사회봉사와 조국 광복을 위해 몸을 던진 선구자였다" 고 평가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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