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전문가 기고] 지놈 성과 특정기업 독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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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0년 전 미국의 주도로 시작한 인체 지놈 해독작업이 이제 완성됐다.

인간의 세포 속에서 유전형질을 구성하는 3백만개의 유전자를 해독한 이 작업이 당장 획기적인 신약 개발이나 새 치료법 등 의료 혁명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새로운 진단.치료를 가능케 하는 연구의 출발점이라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

지놈 연구는 정보공학과 로보트공학 등 해독 작업에 필요한 관련 학문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중요하다.

이번 '인체 지놈 프로젝트' 에는 2백10억달러(약 23조원)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막대한 비용은 그것 자체로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 연구성과를 모든 과학자들에게 공개하는 대신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업적 태도는 연구 비용을 더욱 증가시키고 의학의 발전 속도를 더디게 만들 것이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1차 연구성과를 자유롭게 공유하던 연구분야의 오랜 전통이 상업적 목적 때문에 깨진다면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인체 지놈과 관련된 연구성과는 인류 공동의 재산이며 따라서 즉각 공공 분야에 귀속해야 한다" 고 선언했다.

하지만 윤리라는 이름으로 유전학 연구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은 투자자들이 연구결과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을까. 따라서 연구 자체의 이해와 그것을 촉진하는 투자자들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유전학 연구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명백히 하는 게 급선무다.

특허권이나 지적소유권 등을 바탕으로 DNA 은행을 상업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국제 조약을 통해 인체 유전학적 성과물을 경영하는 국제기구를 설치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인체 지놈은 상징적 의미에서 인류의 공동 자산" 이라고 규정한 유엔의 1998년 '인체 지놈과 인간의 권리 선언' 도 이런 바탕 아래서 구체화할 수 있다.

지놈혁명은 새로운 윤리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놈 연구를 통해 개인이 걸릴 질병을 예측하는 검사를 개발할 경우 각종 질병의 발병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보험회사의 가입 거부, 기업의 고용 거부, 학교의 입학 거절 등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배척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유럽연합(EU)의 과학.신기술 윤리위원회는 근거없는 차별을 피할 윤리 원칙을 정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올 11월에 공식견해를 발표한다. 이 문제는 유럽을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도 진정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지놈은 의료혜택 분배의 윤리 문제와도 관련있다. 부자나라의 국민들은 질병을 피하고 노화를 늦추는 데 엄청난 비용을 쓰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겪고 있는 풍토병을 박멸하는 데는 훨씬 적은 돈을 쓰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유전학은 인류의 의학 발전과 의학 윤리에 있어 소중한 발자취를 남길 여지가 있다.

국제사회의 의지만이 유일하게 이를 가능케 한다. 여기서 윤리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와 결합한다.

<노엘 르누아르는>

▶파리 고등정치대 졸업 동 공법학 박사과정 수료

▶EU 과학.신기술 윤리위원회 위원장

▶프랑스 헌법재판소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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