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를 다시 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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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나는 죽기를 바라진 않소. 하지만 (전쟁 속에서)잠들게 된다면 이를 받아들일까 하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프랑스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엘살바도르 출신인 아내 콘수엘로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전투 참가가 자신의 소명이라고 마음을 굳힌 뒤였다. 샤를 드골 장군이 이끌던 자유 프랑스군은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에게 정찰 비행 임무를 맡겼다.

이듬해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미제 라이트닝 P38 정찰기의 조종간을 잡고 코르시카섬 바스티아의 보르고 기지를 이륙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29일은 생텍쥐페리가 탄생 1백주년이 되는 날. 그의 조국 프랑스에서는 요즘 추모 열기가 뜨겁다.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어린왕자' 등 생텍쥐페리의 대표작들이 재출간되고' 그를 새롭게 조명하는 저술들도 이미 10여종이나 나왔다.

그중 콘수엘로가 남편을 회고한 '장미의 기억' 은 발간 몇주만에 10만권이나 팔렸다.

'어린 왕자' 가 관찰하는 장미가 그녀였다면 이 책은 장미의 시각으로 어린왕자인 생텍쥐페리를 관찰한 셈이다. 한국에서도 번역서가 나왔다.

'장미의 기억' 은 79년 콘수엘로가 숨진 뒤 남긴 유품 가운데 들어있던 원고다.

과테말라 출신 외교관과 결혼했다가 사별한 직후 미망인 자격으로 한 파티석상에서 생텍쥐페리를 만난 그는 31년 아르헨티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책속에서 생텍쥐페리는 귀족출신 바람둥이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콩쉬엘로를 만난 그날 밤 바로 공항으로 데려가 비행기를 태워주면서 '키스' 를 요구한다.

"키스를 안해주면 추락하겠다" 며 비행기를 곤두박질하기도 한다. 비행기안에 준비해둔 멀미약까지 주면서 끈질기게 구혼해 승낙을 받아낸다.

프랑스에서 지폐(50프랑)와 우표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사랑받아온 생텍쥐페리는 1백주년을 맞아 고향 리옹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프랑스 3번째 공항인 리옹 공항의 이름을 '리옹-생텍쥐페리' 로 바꾸는 것. 코르시카섬에서는 1백명의 조종사가 50대의 경비행기를 타고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 경로였던 바스티아-이에르-리옹 구간을 야간비행하는 '생텍스(생텍쥐페리의 애칭)2000' 행사를 갖는다.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그의 죽음에 대한 논쟁도 활발하다. 생텍쥐페리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것은 확실해지고 있지만 독일군 전투기나 대공사격을 받았는지 단순한 기계고장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있다.

이밖에 임시정부내에서 벌어진 드골과 지로 장군 간의 암투 과정에서 정치적 희생물이 됐다는 설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생텍쥐페리의 자살설은 실종되기 직전 그가 남긴 글 속에 깊은 절망과 죽음을 염두에 둔 글들이 많아 설득력을 얻고있다.

그가 실종된 날 그의 방에서 발견된 편지에는 "나는 네번 죽을뻔 했지만 그때마다 별다른 느낌을 받지못했다" 고 씌어있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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