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첫사랑이 궁금한 청문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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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0년 6월은 역사에서 기억될 것이 많은 달이다.

대통령의 북한방문, 의료대란, 그리고 헌정사상 최초의 인사청문회가 그것이다. 의료대란이 대다수 국민을 허탈과 분노에 빠뜨린 사건이었다면 인사청문회는 국민들에게 정치의 희망을 보여주는 새로운 제도여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갖는 의미는 정치의 투명성 확보라는 사실이다.

정치의 투명성이란 정보의 공개를 의미한다. 보다 많은 정보를 갖게 되면 국민들은 과연 적절한 인물이 기용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이를 의식하는 대통령은 인사문제에 보다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다.

인사청문회란 고위공무원의 임용을 대통령에게 독단으로 맡기기보다 국민의 대표에 의해서 평가해 볼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가장 먼저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상원의 조언과 동의에 따라 중요 공무원을 임명해야 한다는 헌법에 따라 인사청문회가 운영돼 왔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의 중요성이 부각된 시기는 언론의 역할이 확대된 1920년대 이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전과는 달리 언론에 인사청문회의 내용이 크게 보도되면서 의회는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에 보다 신중하게 되었다.

즉 정치란 항상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때 제대로 된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클린턴 대통령도 임기 초 1백일 동안 임명직 공무원의 3분의 1만을 선정할 수 있을 정도로 인사청문회를 의식해 신중을 기하였다.

민주주의가 권력 견제를 전제로 한다면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성공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가 긍정적인 효과만 갖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상원의원들이 정당이나 개인적 목적을 위해 고의로 인준을 미루는 의사방해행위를 하거나 해당위원회에서 의도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등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총리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이어 대법관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되는 등 이번 청문회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런데 청문회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서 긍정적인 평가보다 우려의 생각이 앞서게 된다.

우선 청문회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 중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것들이 많다. 청문회를 통해 이한동 총리서리의 아련한 첫사랑이 궁금한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차라리 정치적 첫사랑에 대해서 물었다면 그건 적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답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민련으로 당적을 변경한 이유가 민의에 따른 것이라고 답변하면서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선 여론은 가변적이고 다수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참으로 민의라는 단어는 편리하게 사용된다. 뿐만 아니다. 검사 시절 인권탄압 부분에 대해 자신은 알지 못했으므로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책임이 없다는 답변은 듣는 이를 당황케 한다.

이런 황당한 내용들을 첫 인사청문회라는 이유로 이해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국회의원들은 조사청문회(investigation)와 인사청문회(confirmation)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조사청문회는 주로 과거에 어떠한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반면에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 후보자가 과연 앞으로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갖는다.

물론 과거를 검증함으로써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미래가 단순히 과거의 연장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따라서 인사청문회에서는 과거의 행적에만 얽매이지 말고 국가현안과 앞으로의 국가대사를 처리할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치중해야 한다.

청문회가 끝나면 국회에서 총리서리에 대한 인준투표가 있을 것이다. 청문회의 의미는 국민들에게 고위공무원 후보자의 자질을 알려주는 역할뿐 아니라 국회의 인준과정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적에 얽매이지 않는 교차투표가 전제돼야 한다. 이번 청문회가 독립적 국가기구인 국회의원들의 투표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청문회는 결국 당리당략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현우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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