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영토조항 손질 필요하지만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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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한민국의 영토를 규정한 '헌법 제3조' 의 개정 문제가 정치권에서 잠복과 부상(浮上)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엔 논의해야 할 이슈" 라는 주장이 확산되는 추세지만 사안의 민감함과 미묘함을 의식한 여야가 워낙 조심스러워하기 때문이다.

23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이회창(李會昌)총재는 "헌법개정은 아직 논할 시기가 아니다" 고 못박았다.

전날 '검토' 입장을 밝힌 목요상(睦堯相)정책위의장도 "어제 발언은 우리당이 이 문제가 논의될 경우에 대비하자는 취지였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날 의총에서도 "우리당이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김영춘 의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의원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30일 의원 연찬 겸 세미나를 열어 남북문제와 관련한 당의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당초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의 개정 문제는 여권에서 먼저 나왔다.

주초 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북한 노동당 규약 전문(前文)개정을 전제로 남한의 영토 조항이 손질돼야 한다" 는 의견을 사석에서 개진한 것.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평양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노동당 규약 개정을 약속한 것으로 확인된 점도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노동당 규약은 조선노동당의 목적을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 완수' 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에도 여권은 수뇌부가 '입조심' 을 지시했고, 개헌론은 잠복했다.

6.15공동선언의 후속조치가 얼마간 진행돼 여론이 무르익기 전에 이 문제를 꺼내는 것은 부담이라는 게 여권의 인식이다.

이해찬 정책위의장은 23일 "헌법개정 논란은 실익이 없다. 지금은 평화공존과 교류에 주력해야 하는 단계" 라고 잘라 말했다.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도 보도자료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경쟁적으로 발설하는 여권의 분위기에 우려를 공식 표명했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의 이같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여야 모두로부터 "이산가족 상봉 등 정상회담 후속조치가 가시화하면 개헌론은 재부상할 것" 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수호.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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