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남북시대] '문화충격' 에도 대비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통일의 꿈이 조금씩 영글어 가고 있다. 즈음해 통일 사회에서 남북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실생활에서 겪는 문화적 충격 해소라는 논문이 나왔다.

이달 초 선보인 대한가정학회지(제38권)에는 '사회통합 후 북한 이주민의 생활적응지원 방안' 을 주제로 한 논문이 실려 관심을 끈다.

이는 서울대 이기춘(소비자학과).이기영(〃).이은영(의류학과).이순형(아동가족학과)교수와 서원대 김대년(건축학과).순천향대 박영숙(식품영양학과)교수 등 9명의 학자가 '남북한 생활문화의 이질화와 통합' 이란 큰 주제 아래 3년간 공동 연구한 결과물. 이미 4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으며 '사회통합…' 은 이 연구의 결정판이다.

탈북자 10명을 대상으로 연구자 3인이 시행한 면접조사와 남한주민 3백9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연구의 근간. 이미 진행한 옌벤지역 현지 조사와 탈북자 1백58명에 대한 설문조사결과도 보태졌다.

연구자들은 "최근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한 모습이 일부 공개되자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것을 감안하면 사회 통합은 더 큰 쇼크를 가져 올 수 있다" 고 말한다.

"가스를 사용해 본 경험이 없어 밤새도록 가스를 틀어놓은 적이 두 번이나 있었어요. "

"물건을 사면서 값이 비싼 지 싼 지를 분별하는 데만 2년이 걸렸어요. 신용카드도 꼭 빚지는 것 같아 쉽게 쓸 수 없었어요. "

"북한에선 국가가 알아서 해주는 게 많아 바쁘지 않은데 남한은 모든 것을 자신이 해야하니까 하나하나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요. "

이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 면접에서 나온 사례들. 북한 이주민들이 화폐 단위와 사용에 엄청난 혼란을 느끼며 특히 신용카드나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데 서툴러 큰 피해를 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연구팀은 대안으로 이질감 극복을 위한 생활정착시설 설치, 경제체제 차이에서 오는 소비생활 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여기에 특히 남북한 주민이 서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생활정착시설은 일종의 적응 공동체로 남북한 주민의 이주시 정부가 민간이 공동으로 6개월 정도 머물 수 있는 거주지와 적응 프로그램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연구책임자인 서울대 이기춘 교수는 "생활 차이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남북한 주민이 모두 한 민족이란 동료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음을 이번 연구에서 확인한 만큼 남북 융합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남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남한 주민들이 대체로 북한 주민과 융화하는데 적극 노력하겠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이주민과 다정한 친구나 이웃이 돼 주겠다(88%), 북한 주민이 남한 이주시 주택분양이나 세금공제 등 혜택을 줘야한다(66%)는 데 찬성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 프로젝트는 1996년 교육부가 주관한 '인문사회과학 중점연구영역'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선정됐으며 '북한가정의 생활실태 연구' (97년) '북한의 가족.아동.소비.시간 생활 조사분석' (98년) '북한의 의.식.주생활 조사분석' (99년)논문을 발표했다.

신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