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미사일방위 연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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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이 추진 중인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강력한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변해가는 듯하자 NMD 구축의 명분이 약화했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으며, 유럽과 러시아는 NMD 체제에 맞서 공동 미사일 방위망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빌 클린턴 미 행정부는 북한 등의 미 본토에 대한 공격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강행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 미국내 논란〓미 의회는 NMD 체제가 기술적 불확실성 때문에 실전배치가 지연될 수 있다고 클린턴 행정부에 경고한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가 17일 보도했다.

이 의회보고서는 NMD 체제의 핵심 장치인 목표 추적 레이더와 요격미사일.고속 컴퓨터 등의 기술 미비로 실전배치가 지연될 위험이 있으며, 1개월이 지연될 때마다 1억2천4백만달러의 비용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북정책조정관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존 섈리캐슈빌리 전 합참의장, 샘 넌 전 상원의원 등 미 국방정책 전문가들도 NMD 배치에 관한 결정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낸 건의문에서 NMD 체제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북한이나 이라크 등의 잠재적인 미사일 공격 위험성에 의문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18일 NMD 체제를 구축하려는 클린턴 행정부의 의지가 약화하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 북한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외교 행보에도 불구하고 NMD 체제 추진의 발화점이 된 장거리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남북 정상회담의 영향〓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보여준 파격적인 개방형 이미지도 'NMD 옹호론' 에 제동을 걸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군축전문가 존 월프스털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金위원장을 비이성적인 괴짜로 부르거나 그런 이유로 우리가 당장 NMD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기가 훨씬 어려워지고 있다" 고 지적했다.

미 과학자연맹의 수석분석가인 존 파이크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감소함으로써 NMD 개발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며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외교적으로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상황에서 NMD 개발은 유보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제시 헬름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17일 CNN과의 회견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주한미군의 철수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 됐다" 고까지 말했다.

◇ 유럽의 대응〓미국이 NMD 체제 강행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유럽 우방들과의 관계도 악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16일 정상회담에서 '유럽미사일 방위계획' 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유럽과 러시아가 미국의 NMD 체제에 맞서 독자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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