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합병 움직임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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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앙종금과 제주은행의 합병은 종금업계의 지각변동은 물론 2차 금융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차 금융 빅뱅의 파고 속에서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고 영업기반도 열세인 종금사와 지방은행이 살길을 찾아 자발적으로 합병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급속한 영업기반 상실과 대우사태 여파로 위기를 맞고 있는 종금업계는 물론, 지방은행 등 군소 금융기관들을 자극해 다양한 '짝짓기' 를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업종간의 합병은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과 영업기반 확대 등을 통해 통합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기관들은 이번 합병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군소 금융기관들이 체계적인 수익모델이나 경쟁력 강화는 뒷전인 채 무조건 덩치만 키워 살고자는 식의 합병이 이뤄질 경우 이는 되레 부실규모만 늘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 종금업계 지각변동 가속화할듯〓올들어 나라.영남종금이 사실상 문을 닫은데 이어 종금업계의 대부(代父)격인 한국종금마저 최근 유동성 위기를 맞는 등 종금업계는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다.

1997년말 30개사, 자산 50조원에 달하던 종금사는 중앙종금이 은행으로 전환하고 나면 7개사, 자산 13조원으로 줄어든다.

지난 3개월간 1조5천억원의 발행어음이 빠져나가는 등 급속한 자금이탈로 외자유치기업자금 조달창구란 본래 기능을 잃은 것은 물론, CP.회사채 인수업무도 사실상 마비상태다. 최근엔 심지어 기업자금난을 부추기는 금융 주체로 지목되는 실정이다.

이같은 종금업계의 위기는 직접적으로 대우사태가 진원지다. 나라종금이 1조7천억원, 영남종금이 1천5백억원을 투신사를 통해 대우에 지원했다 '대우에 물렸다' 는 소문이 돌면서 자금이탈을 감당하지 못하고 차례로 무너졌다.

정부차원의 지원대책이 논의중인 한국종금도 1천8백80억원의 대우 연계콜로 최근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종금업계의 위기는 금융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서 갈수록 생존이 어려워지는 제2금융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형은행마저 살아남기 위해 몸집 키우기와 틈새시장 공략 등 새 수익원을 찾기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에서 군소 금융기관의 설자리는 좁아들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종금은 물론, 신협.금고.리스 등 군소 금융권은 업무 차별화 등에 경쟁력에 따라 독자생존이 가능한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로 갈리게 될 것" 이라며 "도태되는 금융기관에 정부차원의 지원계획은 없다" 고 밝혔다.

실제 종금처리를 위해 정부는 지난 2월 증권사로 전환.합병하는 종금사에 특혜를 주는 '종금사 발전방안' 을 내놓고 추가대책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종금업계 반응은 부정적이다.

D종금사 임원은 "증권사와 합병할 경우 실익이 별로 없는데다 기존 증권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 이라며 "투신사처럼 정부의 실효성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고 말했다.

다른 종금사 관계자는 "이번 중앙종금의 합병이 정부와 시장의 틈새에서 미래의 생존모델을 찾는 종금사나 지방은행, 금고 등의 이합집산을 가속화할 것" 으로 전망했다.

◇ 합병 의미.전망〓제주은행은 자본금이 늘어나 외자유치가 가능해지는데다 리스.수익증권 등 종금사 업무도 가능해져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중앙종금도 기업어음(CP).회사채 인수 등 영업기반이 급속히 약화되는 종금업무 대신 은행의 여.수신 기능을 얻게 돼 투자은행으로 발돋음 할 수 있게 된다.

중앙종금측은 이같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경우 앞으로 5년내에 당기순이익을 2조원이상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금융감독원은 "서로 다른 업종의 금융기관이 전략적 제휴를 통해 살길을 찾는 첫 사례로 바람직한 방향" 이라며 "합병을 신청해 올 경우 승인해줄 방침"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주은행은 이자를 제대로 못받는 무수익여신 비율이 지난해말 현재 11.7%로 지방은행중 가장 높은데다 국제결제은행(BIS)비율도 6.7%로 가장 낮은데다 중앙종금측도 최근 자금이탈 등으로 영업수지가 악화돼 합병후 부실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제주은행과 중앙종금이 이달말까지 모든 부실을 현재화할 경우 BIS비율하락이 예상돼 후순위채 매입 등 정부지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합병은행에 대해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이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될 경우 일정기간 이를 유예하는 한편 공적자금을 통한 후순위채 인수, 부실채권 인수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정재.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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