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에 띄운다] 미움과 복수를 잊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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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날, 누군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바래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많은 세월들,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하얗게 바래어 사라지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물론 예전에도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김영삼 정부 때였다. 그리고 조금씩 평상심을 회복했을 때 나는 내 무의식 속의 두터운 긴장이 풀리는 기미를 느꼈고 어디 가서 실컷 울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적 감수성이 조금 과장도 되고 조금은 사치스럽거나 허영기도 있을 것 같았다.

내 고향 수복(收復)지구 사람들. 6.25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북한주민으로 살았던 사람들. 동해안의 38선 휴게소로부터 휴전선에 이르는 지역의 주민들 중에 가족이 온전히 남아 있는 집이 얼마였을까. 지난 50년 세월 동안 자신의 뿌리를 잘라버리고, 부정하고 피붙이의 정을 불로 태워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북에 올라간 남편과 자식과 부모와 형제가 그리워지는 '죄' 때문에 표정이 말라버린 사람들에 비하면 내 감정은 하나의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가 이북에 갔다는 걸 아는 소년이 늘 '빨갱이 때려잡자' 는 포스터와 표어를 지어야 할 때. 그렇게 자란 내 친구들, 지금은 오십줄에 들었지만 한번도 자기 정체성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아로 자란 내 친구. 어린 자신만 두고 '북한 공산괴뢰' 가 된 아버지.어머니. 천륜의 그리움이 죄악이 됨을 알아버린 수복지구의 새싹들. 이들은 사랑보다 먼저 증오를 익혔다.

내가 어릴 때 우리는 학교에서 늘 미움과 복수를 배웠다. 그렇게 배우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은 딴판이었다.

할머니는 자식이 그리워 한숨지으며 눈물흘렸고 어머니는 뒤란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빌었다.

어느 집에선 한밤중에 북에서 자식이 내려와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고 갑자기 그집과는 왕래를 끊었다.

한 핏줄이라면서도 그 핏줄이 원수라고 믿어야 하는 가치혼란과 정서교란의 환경에서 우리는 컸고 이렇게 어른이 되었다.

가치와 정서의 엄청난 불균형을 지병(持病)으로 안고서.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내가 남북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는 국토의 통일, 정치체제의 통일이 아니다.

반세기 동안 우리 정신을 좀먹어버린 공포와 증오심, 그 허위의식이 벗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와 정서의 균형을 이룬 밝고 건강한, 온전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로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자중자애(自重自愛)의 바탕에서만 지킬 수 있으므로.

이경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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