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잔혹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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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대 유럽의 국왕들에게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나의 유희였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즐기다 보니 그들의 살인방법은 갈수록 잔인해졌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폭군 파라리스는 사람을 화염 속에 던져놓고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감상' 했고, 기원전 4세기의 알렉산더왕은 사나운 사냥개의 무리들이 멀쩡한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는 과정을 낱낱이 지켜봤다.

기원 1세기의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사람을 바다 속에 빠뜨려 허우적거리다 죽는 모습을 즐겼다.

이같은 잔혹 살인은 일반사회에까지 번져 18세기 유럽사회에서는 한동안 사지를 절단해 죽이는 이른바 '토막살인' 이 크게 유행했다.

현대에 이르러 많은 과학자들이 잔혹살인의 동기를 알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많은 연구결과가 발표됐는데 그 중 꽤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뇌와의 관련설이다. 사람의 뇌속에 있는 작은 편도핵(扁桃核)이 사람을 잔혹하게 하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편도핵을 전류로 자극하는 실험을 한 결과 피실험자가 극도의 난폭성을 보였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

실제로 대개의 잔혹 살인자들은 뇌에 크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텍사스주 한 대학의 탑 위에서 총기를 난사해 18명을 죽인 범죄자는 뇌종양으로 밝혀졌고 시카고에서 8명의 간호사를 엽기적으로 살해한 범죄자는 유년시절 그네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혀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안락과 권태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보는 과학자들도 있다. 고대 유럽의 국왕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에서 좀 더 끔찍하고 기이한 체험을 위해 저지르고자 하는 잔혹한 살인행위의 욕망은 현대인의 심리 속에서도 얼마간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보면 근심.걱정 없는 사회가 오히려 흉악범죄의 요인을 구석구석에 숨겨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흉악범죄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60대 노부부를 토막 살해한 용의자로 아들이 검거돼 세상을 경악케 하는가 하면 30대 주부 토막 살인사건은 한 스릴러 영화의 범죄수법을 그대로 모방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데 언제까지나 이런 잔혹살인에 대한 공포로 떨고 살아야 할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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