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국기업의 힘은 '회의 문화'…계급장은 떼고 머리 맞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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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식업체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는 매달 한번씩 아침식사를 하면서 사장을 비롯 전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회의는 기업을 움직이는 힘이다" "쓸데없이 긴 회의, 내용이 형편없는 회의, 지루한 회의는 기업의 암(癌)이다"

바바라 J. 스트라이벨의 '회의의 기술'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좋은 회의는 회사를 살리고 나쁜 회의는 망친다는 뜻이다. 모든 회의에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기업에는 일종의 투자다. 이 때문에 외국계 기업들은 다양한 회의 방식을 통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필요하면 회의 장소.호칭.격식을 파괴하는 경우도 많다.

외식업체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본사에는 매달 5일 아침 풍성한 아침상이 준비된다. 이날은 회사의 월급날이자 조찬 회의날이다. 2001년 12월부터 시작한 조찬 회의날에는 정인태 사장 등 본사 직원 모두가 돌아가며 아침식사를 직접 준비해온다. 샌드위치.닭죽.잔치국수 등 다양한 메뉴가 직원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의 송수정 매니저는 "편안한 회의를 통해 다른 직원들과 친목도 도모하고 아이디어도 교환한다"고 말했다.

스포츠화 업체 뉴발란스는 매주 수요일 오후 신제품 운동화를 신고 참여하는 '마라톤 회의'를 한다. 조용노 사장을 비롯한 전직원들은 한강.남산 등에서 8km를 함께 뛰고난 뒤 제품 품평을 한다. 업무상 아이디어, 애로사항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마련이다.

뉴발란스의 히트상품인 '1050'과 '834'시리즈도 이런 회의에서 품질이 개선됐다고 한다. 뉴발란스의 황일찬 마케팅 과장은 "틀에 얽매이지 않아 젊은 직원들의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곧장 신제품에 반영돼 좋다"고 말했다.

야후코리아에는 회의 시간이 30분을 넘으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다. 회의 시간이 길어지면 참가자들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회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직원들은 관련 자료와 정보를 회의 전에 숙지하고, 회의는 핵심만 짚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회의 장소인 사내 까페에 '푸스볼'등 게임도구를 마련해 딱딱하기 쉬운 회의 분위기를 풀어준다.

'프리 토킹'은 DHL코리아의 독특한 회의 제도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직원들은 누구든지 사원 복지.업무 애로사항.아이디어 등을 올릴 수 있다. 심사를 통해 좋은 의견을 낸 직원에게 상금을 주고, 누적 점수가 높은 직원에게는 해외연수 기회도 준다.

지난달에는 배달 직원의 효율적인 열쇠 보관방법, 콜센터 전화연결 개선법, 배송차량 청결 유지법 등에 대한 의견이 올라왔다. 이 회사 마케팅팀 주은정씨는 "지난해 올라온 '이라크 구호물자 무료운송' 제안은 본사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며 "직원들이 서로 의견을 보완해주는 등 협력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 오라클의 회의 시간에는 '과장님', '부장님'등의 존칭을 들을 수 없다. 이 회사 모든 직원은 별도 직급 없이 회사에서 서로 '씨'나 '선생님'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최선의 결과는 계급장 떼고, 끝장 토론을 해야 나온다"는 것이 이 회사 윤문석 사장의 지론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토론 문화 덕분인지 직원들이 협력사 관계자를 만나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고 밝혔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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