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서울탐험] 용산 미군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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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풍수지리설에서 길지(吉地)의 요건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배산임수(背山臨水)다. 이런 기준으로 볼때 용산지역은 서울에서 길지의 하나로 꼽힐만 만하다.

북악산.낙산.인왕산과 더불어 서울 내사산(內四山)의 하나인 남산(옛 목멱산)을 뒤로 하고 수량이 풍부한 한강을 끼고 있으니 말이다.

용산지역은 남산을 기준으로 지금의 한강로(서울역~한강대교)와 한남로(남산1호터널~한남대교), 강변북로(한강대교~한남대교)로 둘러쳐진 일대를 말한다.

그러나 근현대사를 통한 용산의 토지 이용 과정을 되돌아 보면 과연 이곳이 축복받은 땅인지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단국대 조명래(趙明來)교수는 "요충지인 용산동 1~6가 지역 1백5만평은 한반도에 들어온 외국 군대가 단골로 주둔했다" 며 "따라서 이곳은 역사바로세우기의 공간적 출발점이 돼야 한다" 고 강조한다.

이곳은 7백여년전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이 병참기지로 처음 이용했다. 이어 임진왜란(1592년)때는 일본군이, 청나라 군은 임오군란(1882년)때 진주했다.

용산이 외국군대의 주둔지로 고착된 것은 일제가 용산일대 3백만평의 토지를 총독부관저.일본군사령부로 강제수용하면서 부터다. 해방과 더불어 진주한 미군이 휴전협정 이후 사령부를 이곳에 정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 용산 미군기지는 도시구조를 왜곡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례로 동작대교는 한강북단에서 쭉 뻗어나가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굽어 수백억원을 들인 교량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또 지하철 4호선은 한강을 건너면서 뱀꼬리처럼 왼쪽으로 휘어져 용산~서울역 구간은 전철 1호선과 노선이 중복돼버렸다.

용산 기지 1백5만평은 90년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공원화가 추진됐으나 미군측 비협조로 좌절됐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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