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2시간 30분 늦게 무대 오른 건스 앤 로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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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첫 만남은 춥고 고단했다. 13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적인 메탈그룹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첫 내한공연. 공연 예정시간인 7시가 넘어서야 입장이 시작됐다. 관객 6000명은 한 시간여를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오프닝 밴드의 공연이 끝나고 한 시간이 넘도록 ‘건스 앤 로지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티스트의 요청으로 공연이 늦어지고 있다. 간혹 일어나는 일인 만큼, 이해를 부탁한다”는 안내방송이 두 번 나왔을 뿐이었다.

그들이 무대에 오른 것은 예정보다 무려 2시간 30분이 늦어진 오후 9시 30분. 문제는 ‘건스 앤 로지스’의 리더 액슬 로즈였다. 그는 대기실 문을 걸어 잠그고 진행팀의 통사정에도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참다 못한 관객 50여명이 환불을 받아 돌아갔다. 로즈는 공연 시작 후에도 한동안 힘겨워했다. ‘차이니즈 데모크라시(Chinese Democracy)’ ‘웰컴 투 더 정글(Welcome To The Jungle)’을 잇따라 부르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물론 사과도 없었다.

대단한 것은 관객이었다. 긴 기다림을 보상받으려는 듯 열광적으로 즐겼다. ‘노킹 온 더 해븐스 도어(Knocking On The Heavens Door)’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이 흘러나올 때 야광봉을 흔들며 ‘떼창’으로 화답했다. 무려 다섯 시간을 서 있어야 했던 스탠딩석의 관객들은 뒷자리에 주저앉는 등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공연은 12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대중교통이 끊어진 시간, 관객들은 ‘귀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가 악동인 줄 몰랐느냐. 원래 아티스트란 그런 것”이라는 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가수가 똑 같은 모습을 보였다면? ‘세계적 스타’란 타이틀에 우리가 얼마나 약해지는 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자리었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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