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한국 '난민 1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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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근대적 의미에서 난민(難民)문제의 등장은 국민국가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한다. 19세기 들어서다. 국경이 폐쇄적으로 획정되고 여권과 비자제도를 통한 국경통제가 강화되면서 월경(越境)난민이 국가간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난민이 국제사회의 본격적 이슈로 대두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일시적.단속(斷續)적.소규모였던 난민 발생이 일상적.지속적.대규모 현상으로 변한 것이다.

다민족 국가로 구성된 제국(帝國)의 붕괴와 혁명 대 반혁명세력의 대결, 민족주의의 고양으로 유럽 각지에서 난민이 쏟아졌다.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1백50만명이 러시아를 떠났고 터키에서도 1백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쫓겨났다.

히틀러의 집권은 독일.오스트리아.체코 등에서 유대인 엑소더스를 불러왔고 스페인에서는 내전을 피해 수십만명의 왕당파 지지자들이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몰려갔다.

주로 유럽의 문제였던 난민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지구촌 전체로 확산된다. 팔레스타인 난민, '보트피플' 로 불리는 베트남 난민, 티베트 난민은 난민의 대명사가 됐다.

아프리카 신생독립국들의 국경이 기하학적 편의성에 따라 획정되면서 나타난 국경과 종족의 불일치 현상은 수백만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양산하는 원인이 됐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유고연방에서도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1951년에 체결된 '유엔난민협약' 은 난민(refugee)을 "인종.종교.국적.사회적 소속.정치적 신념에 의해 박해받을 만한 '근거있는' 두려움 때문에 고국을 떠나 있으면서 고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 으로 규정하고 있다.

난민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예상되는 박해 가능성을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입증해야 한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실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해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는 98년 말 현재 1천1백50만명이다.

경제적 동기를 정치적 동기로 위장해 난민 지위를 따내려는 개도국 출신 불법체류자들 때문에 심사가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경향이다. 그래도 신청자 4명에 한명 꼴로 난민 지위가 부여되고 있다.

난민협약에 가입한 1백38개국에서 98년 한햇동안 이뤄진 난민자격 심사건수 총 65만건 가운데 17만건(26%)이 통과됐다.

우리나라가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지 올해로 8년째다. 그동안 75명의 외국인이 난민신청을 냈지만 난민판정을 받은 경우는 아직 없다. 카메룬 출신 반체제 인사인 타크위씨에 대해 법무부가 난민 지위를 부여할 방침이라는 소식이다.

그대로 된다면 그는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난민 1호' 가 된다. 21세기는 국제사회의 비극에도 눈을 돌리는 열린 가슴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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