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등을 통해본 역사 읽기 '기호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역사 읽기 방법으로 대개 세 가지를 꼽는다. 시대 순으로 읽어내리거나 특수 분야의 변천 과정을 분석하거나 사건 중심으로 엮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최근 프랑스 아날학파의 영향으로 익숙해진 생활사 중심의 역사 보기가 있다.

독일 저술가 볼프강 쉬벨부시의 '기호품의 역사' (이병련 등 옮김.한마당.9천원)는 일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커피.초콜릿.술.담배 등을 통해 본 역사 읽기. 아날학적 요소가 진한 이 책은 기호품이 근대 유럽 인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다룬다.

생활사 중심의 역사 서술은 그 흔적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기호품의 역사' 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도 가끔 커피를 술 깨는 용도로 마시기도 한다.

물론 의학적으로 커피가 이런 능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증명됐다. 그러나 17세기의 커피는 '위대한' 각성제였다.

당시 커피 선전은 이랬다. '알콜이 드린 안개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인류는 커피의 도움으로 깨어나 시민적 각성과 근면성에 이르게 된다' 고. 이런 생각은 19세기까지 이어진다.

커피의 과잉포장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커피는 색욕을 줄이고 발기부전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을 정도다.

커피가 이런 지경에 이르기까지는 영국 청교도주의자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저자는 "기독교적 윤리가 커피를 이런 의미로 규정했으며 심지어 영육(靈肉)을 위한 음료라고 선언했다" 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 중에도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마약도 커피나 담배처럼 기호품으로 즐길 날이 올 것이라는 것.

커피나 담배가 등장 초기에는 심각하고 자극적인 식품으로 인식돼 금지 식품으로 낙인찍혔지만 점차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 기호품으로 일반화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근거다.

저자는 마약 역시 조금의 완화과정만 거친다면 기호품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굽히지 않는다.

신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