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금융구조조정과 공적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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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는 1997년에 들어서면서 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촉발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 64조원의 공적(公的)자금을 조성하여 사용해 왔으며, 법령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64조원과는 별도의 자금을 지원했다.

국제기구로부터 도입한 차관자금과 국유재산관리특별회계에서 보유하고 있는 정부주식, 공공자금관리기금이 여유 재원으로 갖고 있는 공공기관 발행 채권 등 약 26조원 규모의 자금이 별도로 지원됐으나 이러한 자금의 대부분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공적자금이 조성되기 이전인 초기 위기극복 과정에서 제일.서울은행과 종합금융회사 등 금융기관의 도산을 막고, 기업의 연쇄부도를 방지하기 위해 지원한 것이었다.

이러한 자금의 사용에 대해선 지금까지 사전승인 또는 사후보고 형태로 여러 차례에 걸쳐 국회의 심의를 받는 등 감춤 없이 집행해 왔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지원함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밟아 공개적으로 진행해 왔다.

우선 공적자금의 투입대상인 부실 금융기관을 적기시정조치절차(適期是正措置節次)에 따라 엄정하게 선정하고, 회계법인에 의한 실사 등을 거쳐 부실 규모를 엄격하게 판정하며, 금융기관의 자구(自救)노력과 동종(同種)업계 이해관계자의 손실분담을 우선하게 한 후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자금소요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 왔다.

공적자금 투입 후에는 대주주.경영진 등 부실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책임추궁을 통해 손실분담원칙과 시장규율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금융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약 30조원의 자금소요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올해 중에는 한국.대한투신 경영정상화 지원(4조9천억원), 대우채 보증에 따른 ?浙망觸맨?출자, 제일은행 풋백옵션, 기타 소규모 금융기관에 대한 예비적 예금대지급 소요 등으로 약 20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 소요될 20조원에 대해서는 현재 보유한 여유재원 6조원과 향후 자산 매각 및 채권회수를 통해 회수가 예정된 자금,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이나 자산담보부증권(ABS)발행 등을 통해 조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년으로 이연된 10조원의 자금은 구조조정을 미루기 위해 연기한 것이 아니라 지급(支給)소요가 그 때 가서 발생하거나 긴급성이 없어 지급시기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내년 중 소요는 기왕에 투입된 자금으로 회전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의 용도별 정확한 지원계획은 적정한 시점에 투명하게 공개해 나갈 계획이다.

위기초기의 급한 불을 끈 현재 이후의 금융구조조정과 공적자금 투입은 보다 철저한 책임분담과 자구노력 선행(先行)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도덕적 해이와 공적자금의 낭비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은행을 예로 들어보면, 먼저 부실의 규모를 은닉함이 없이 철저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 다음에 이에 상응한 대손충당금(貸損充當金)을 쌓거나 대손상각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자금이나 자본은 점포와 인원의 절감, 비용의 절감, 수익의 확대와 아울러 후순위채(後順位債)를 시장에서 발행해 마련하는 등 자기책임의 노력이 선행된 다음에, 또는 최소한 이를 전제로 공적자금 지원여부가 논의돼야 한다.

정부가 공적자금 추가조성을 위한 국회 동의를 가급적 받지 않고자 하는 것은 책임을 면하거나 문제를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성된 공적자금의 규모를 가급적 늘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국민의 부담을 줄여나가기 위한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부담이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금융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위기 초기와 달리 급한 불을 끈 현재 시점에서는 모럴 해저드 방지를 위해 보다 철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국민 여러분들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한다.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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