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로비의혹때마다 뭘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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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율곡.백두사업 비리 등 군 장비 도입을 둘러싼 로비 의혹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무기 구매 시스템의 개선을 외쳤다.

하지만 일부 절차만 고치는 '땜질' 에 그쳤을 뿐 투명성.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대수술은 단행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1993년과 96년 율곡비리 사건이 터지자 무기 구매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사업 명칭을 율곡사업에서 '방위력 개선사업' 으로 바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으려 했다. 또 무기 획득 절차를 명확하게 손질했다.

정부는 또 지난해 국방부 획득실장에게 무기 도입 권한을 위임, 엄청난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을 책임지고 집행토록 했다. 무기 구매 절차도 38단계에서 24단계로 줄였다.

하지만 전직 군 고위 인사는 "이 정도 처방으로는 군 장비 도입 비리를 막을 수 없을 것" 이라면서 "군 고위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큰 문제" 라고 강조했다.

96년 국방부가 구매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는 와중에 백두사업 비리가 진행되고 있었음이 린다 김 사건을 통해 확인됐다.

무기상들의 로비를 관리.감독해야 할 국방부장관이 오히려 로비스트의 편에 서 있었던 것이다. 군처럼 경직된 조직에서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장관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장관이 도덕성을 잃으면 그 아래 직원들도 따라가는 게 현실이다.

군내 전문가 부족 역시 문제점으로 꼽힌다.

진급을 위한 경력 관리에 급급해 2~3년마다 부서를 옮기는 관행으로는 무기 전문가의 양성이 요원하다. 그래서 민간 전문가가 군 수뇌부에도 포진해야 전문성 축적이 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백두사업에 참여했다는 한 군 관계자는 "계약 체결 당시 전문기관의 검토가 한번도 없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사업의 핵심 부분인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경험이 부족한 위관급장교 혼자 계약 업무를 맡았다" 며 "결국 계약이 잘못돼 말썽이 날 줄 알았다" 고 밝혔다.

장비 도입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무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결정하지 못하는 군의 태도도 비리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군 관계자들은 "89년 F-18로 결정된 한국형 전투기사업(KFP)이 1년 만에 F-16으로 바뀐 것도 전투기 성능에 대한 공군의 신념이 부족했던 탓" 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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