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사막 남극을 찾아서]① 남극의 관문 푼타 아레나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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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남극 세종기지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지난 11월24일 한국을 출발해 남극 세종기지가 위치한 ‘킹 조지’ 섬에 들어가기 위한 관문인 칠레 푼타아레나스까지 오는 데만도 한국 시간으로 3일 정도가 소요됐다. “까짓 것 그 정도야”라며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긴 비행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필자와 극지연구소에서 극지기지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강천운 팀장은 한국시간으로 11월 24일 오후 2시 비행기로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이후 만 12시간 만에야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극 세종기지에 가는 노선은 미국 LA를 거쳐 칠레 산티아고, 푼타 아레나스를 경유하는 노선과 유럽을 거쳐 칠레 산티아고 푼타아레나스까지 오는 노선 등 2가지가 주로 이용된다. 우리 일행은 후자를 택했다.

일행은 파리에서 칠레 산티아고로 가는 항공편으로 갈아타기 위해 5시간 가량을 기다려야만 했다. 일행은 공항밖으로 나가는 대신 공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공항을 벗어났다가 다시 탑승수속을 밟는 시간을 고려하면 파리 시내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3시간도 안됐기 때문이다. 또 장시간의 비행으로 쉬고 싶다는 마음 뿐 관광에 대한 욕구가 일지 않은 탓도 있었다.

파리 드골공항에서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국에서 파리까지 가는 비행 시간보다 3시간 가량이 긴 15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결국 한국에서 파리를 거쳐 칠레 산티아고까지 오는데 순수 비행시간만 하루 이상이 걸린 셈이다. 예전에 가보지 못했던 남미라는 오지를 간다는 기대감은 오랜 비행에 따른 지루함과 피곤함에 묻혔다. 제대로 씻을 수조차 없어 몸이 더욱 피곤했다.

지루한 비행을 마치고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내렸을 때의 첫 느낌은 초여름에도 불구하고 싸늘한기운이 감도는 삭막함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을 비롯해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면서 본 환경은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아스라히 사라질 듯 보이는 높은 안데스 산맥에는 빙하가 덮혀 있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에 사는 필자에게 빙하는 언제 봐도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황해를 파고 또 파면 칠레 앞바다가 나온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어 칠레의 환경과 한국의 환경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의 날씨부터 이국적이었다. 목이 짧고 하체가 굵은 현지인들도 색달랐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대장금’이라는 한국식당. 재미 있는 것은 이 곳의 택시 지붕이 모두 노랗다.


10여년 동안 세종기지를 오간 강 팀장이 칠레에 확보한 단골 식당이 바로 ‘대장금’이었다. 대장금의 주요 고객은 칠레에 사는 교포들과 상사 주재원, 대사관 직원, 한국관광객 그리고 현지인들이었다. 대장금은 산티아고의 구 시가지에 있었는데 식당 주변 건물 벽은 스프레이 물감으로 그린 그래피티가 많았다. 게중에는 상당한 수준의 그림도 많았다. 페인트 회사들이 무료로 스프레이 물감을 길거리 미술가인 그래피터들에게 공급해주고 있다고 한다. 무료로 스프레이 물감을 공급받은 그래피터들이 벽에 그림을 그리면 그림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건물주인들이 자주 페인트 칠을 해야 돼서 페인트 회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얄팍한 상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낙서가 아닌 상당한 수준의 그림들이 그려진 벽은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일행은 산티아고에서 한국 교포가 운영하는 민박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산티아고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아 칠레 공군기를 빌릴수있도록 해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칠레에는 남극으로 가는 민간기가 없어 칠레 공군의 공군기를 빌려야만 한다. 칠레는 세종기지가 들어선 킹조지 섬에 자기네 공군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필요한 물품 공급과 인력 수송을 위해 공군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행기를 잘 빌려주던 칠레 공군이 최근에는 비행기 빌려주는데 약간 인색하단다. 남극 대륙의 일부를 자기네 영토로 간주하고 있는 칠레 입장에서 다른 나라가 남극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현재 킹조지 섬에 세종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3년 남극 대륙에도 기지를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또 얼마 전에는 얼음을 깨고서 남극을 탐험할 수 있는 쇄빙선 ‘아라온’호를 진수했다.

필자는 일행이 칠레에서의 일을 마칠 때를 기다려 푼타 아레나스로 향했다. 푼타 아레나스는 남미 대륙에 있는 최남단 도시이다. 극지연구소는 세종기지 지원을 위해 이곳에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단독주택을 개조한 사무소에는 숙소와 사무실, 그리고 음식을 직접 조리해먹을 수 있는 주방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필자와 강천운 팀장, 그리고 하루 늦게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한 다른 극지 지원팀 대원들과 함께 한국에서 세종기지로 보낸 다양한 기기들과 현지에서 구매한 물품을 배에 실어 세종기지에 보내게 된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다.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내년 2월 초까지 박씨의 남극 일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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