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천수이볜 단독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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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만의 총통선거가 끝난 뒤 천수이볜(陳水扁)당선자를 두번 만났다. 3월 24일과 4월 6일이었다.

처음엔 1978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로서 당선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다음엔 중앙일보측의 의뢰에 따라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두 차례의 회견은 모두 두 시간 이상 계속됐다.

- 양안관계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취임사에서는 획기적인 대책이 발표될 것인가.

"대만 사람이나 대륙 사람 모두 중화민족으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며 서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양안관계가 불안정한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대만의 선진기술과 대륙의 노동력이 결합해 양안이 서로 발전하길 원한다. 양안간의 문제가 대등한 관계에서 논의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취임사에 모든 성의를 다 담을 생각이다. 그러나 전임자가 십수년간 해결하지 못한 일을 일거에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대륙측의 얘기도 들어가면서 준비 중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동안 경제교류를 제한해왔던 '삼불정책' 은 가능한한 과감히 폐지하려고 한다.

물론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문제들이 없지 않다. 양안간의 대화가 진지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신뢰를 쌓아가는 조치들을 취하겠다.

최소한 앞으로는 대만 선적의 배가 가오슝(高雄)항에서 직접 상하이(上海)로 들어가고, 반대로 대륙의 배가 직접 가오슝항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다. "

- 중국측의 얘기를 듣는다는 말은 비밀접촉을 하고 있다는 뜻인가.

"많은 경로를 통해 대륙측의 여러 얘기를 충분히 듣고 있다. "

-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면서 무력사용 압력도 불사하고 있다.

"대륙과 대만 모두에 불이익이 돌아갈 게 뻔한 상황에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양안 문제는 양안만의 일이 아니다. 많은 화물선이 대만해협을 통과한다.

한국배는 5분에 한 대, 일본 배는 3분에 한 대꼴로 통과하고 있다. 만약 양안간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겠는가. 양안문제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문제다. "

- 총통선거 유세 기간 중엔 대만 독립을 주장했고, 그것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대만인이 살 수 있는 생존공간의 확보와 확장, 그리고 대만의 지속적인 번영이 최우선 과제다. 그 문제는 지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민진당에서 당헌의 개정 등 다양한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 양안관계의 안정을 위해 중국을 방문할 의향이 있나.

"총통 당선 인사에서 밝혀듯이 국내사정이 좋아지면 방문하고 싶다. 물론 장쩌민(江澤民)선생 등의 대만 방문도 언제든지 환영한다. "

- 한국과 대만의 관계개선을 위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가.

"민간경제교류가 활발해지길 원한다. 지난해 지진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따뜻하게 도와줬던 것을 잊지 않고 있다. 1992년 단교와 함께 이런 저런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던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양국관계가 설정되길 바란다. "

- 양국이 단교하기 전에는 양국 각 2개 항공사들이 1주일에 58편 오고갔다. 하루 빨리 복항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양국 국민과 경제인들이 편안히 오갈 수 있는 환경을 하루빨리 만들어 주고 싶다. 대만인들은 한국산 사과와 배 등을 무척 좋아했다. 한국인들은 대만산 바나나를 즐겨 먹었다.

대만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 국교단절 이후 중단된 농산물교역 문제도 세계무역체제의 틀 안에서 자연히 풀려갈 것이다.

또 대만은 지진 이후 미화 6천억달러 규모의 피해복구 건설사업이 이뤄질 것이다. 자격있는 한국 기업들이 이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도 자동차를 무조건 사달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대만 부품의 구매도 늘려나가는 식으로 양국의 경제가 상호호혜 보완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 단교 과정에서의 감정적인 문제가 양국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양국의 관계 회복에 이런 저런 조건을 달지 않을 생각이다. 한국도 대만인들의 정서를 깊게 헤아리는 성의만 보여준다면 모든 현안이 힘들지 않게 풀려갈 것으로 믿는다."

- 국민당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당선되기 어려웠을 만큼 지지율이 낮았다. 그러나 대만의 민주화와 부정부패의 근절 등 국민들의 기대는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나갈 생각인가.

"3분의2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나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고 있다. 국민당 등 출신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겠다. 단계적으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지를 모아 문제를 개선해나갈 생각이다. 타이베이(臺北)시장 시절 개혁 정책을 추진했던 경험을 거울로 삼아 합리적으로 대처해나갈 생각이다. "

- 검은 돈이 정계로 흘러들고 있지만 이를 단번에 차단하려 든다면 큰 혼란이 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 않나.

"대만에 깨끗한 사회분위기가 흐르도록 하겠다(淸流臺灣). 한국의 민주화 경험은 대만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는 데 거울이 됐다. 그러나 한국에서 했던 방식(역사바로세우기 등)을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는 않다. "

- 재임 중 가장 역점을 두고자 하는 분야는.

"안정적인 양안관계의 확립이다. 양안관계의 안정으로 대만인들의 생존공간을 확장.확보하는 데 가장 역점을 두겠다. 또 국민들의 중지를 모아 개혁과 개선을 동시에 추구할 것이다. "

-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다. 정치논리를 떠나 아시아가 유럽연합(EU)처럼 경제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만.한국.일본이 뭉치면 러시아.몽골.중국 등도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의 경제적인 번영이 21세기의 세계를 주도하고 세계를 평화로 이끌 수 있는 견인차가 돼야 한다."

강명상 <경남대 교수 중국관계연구소장>

[강명상(姜命相.54) 약력]

▶대만둥우대 정치학과 졸업(74년) ▶대만쳉치대 행정학 석사(78년) ▶대만중국문화대 정치학박사(84년) ▶합동통신 타이베이특파원 역임(74~79년) ▶한.중기자협회 부회장 역임(78~84년) ▶現 경남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중국관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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