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우이동 시인 임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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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노시인 임보(61.충북대 국문학 교수)씨는 북한산 동쪽자락인 우이동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덕성여대 입구 2층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그 사이 높은 건물들이 주변을 에워싸 북한산 인수봉이 보이지 않는다. 시상을 가다듬으려면 이젠 길 건너 솔밭을 지나 보광사 옆 산길로 가야 한다.

"봄바람에 벚꽃잎 분분히 흩날리니/산비둘기 구구구 날아와 무네" ( '춘흥' 전문) 벚꽃이 바람에 눈처럼 날리고 산비둘기가 무슨 먹인줄 알고 달려든다.

선계(仙界.신선이 사는 세계)의 시인이라는 별칭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그는 요즘 산을 자주 찾는다. 벚꽃만 아니라 개나리.진달래.산수유.목련까지 허드러져 우이동 계곡이 선계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근 그의 시형식이 많이 바뀌었다. 아주 짧은 시를 쓴다.

"현대시가 극단적인 자유를 추구하다보니 리듬을 잃었어요. 시가 산문과 구분되는 제1특성이 운율입니다. 우리말로 가락에 실어야 시가 되는 거죠. "

임씨는 학자답게 시를 연구해가며 쓰고, 연구결과에 따라 형식을 바꾸기도 한다. 그가 전통시를 연구해 얻은 우리의 전통가락이 4행시다.

"낙락장송 솔잎 끝에/매달린 이슬 하나/낙산사 동해 위에/떨어져 일파만파" ( '이슬방울' 전문) 그는 지난 2년간 이런 짧은 시를 써모아 '운주천불(雲舟千佛)' 이란 시집을 내놓았다. 4행시보다 더 짧은 시도 많이 실려있다.

"연잎 위에/떠 있는/초록의/고요 한 점" ( '청개구리' 전문) 14자에 불과하다. 일본의 하이쿠(俳句.17자로 된 짧은 시)보다 짧다.

"하이쿠는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아 국민문학으로 발전했고, 서구인들로부터도 극찬을 받고 있어요. 우리도 단시(短詩)의 전통이 있는데, 그동안 너무 잊고 지냈습니다. 짧고 깊이 있는 시를 계속 써나갈 생각입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 도봉도서관 벽에는 '우이동 시낭송회-매월 마지막 토요일 5시. 시청각실' 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임씨가 우이동 터줏대감인 이생진.홍해리.채희문씨 등과 함께 14년째 계속해온 시낭송회다.

북한산 우이동 계곡에는 광속으로 달려가는 세상과 겨루지 않고 자신의 시침과 분침으로 살아가는 편안한 신선이 있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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