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에 불길 번져 3,900명 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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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원도 삼척에서 일어난 불이 남하하며 12일 오후 경북 울진으로 번지자 중부 동해안 일대가 '산불 공황' 에 빠졌다. 여기에다 이날 오전 강릉시에서도 산불이 발생, 시가지가 검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뒤덮이는 등 수라장을 이뤘다.

○…12일 오후 1시쯤 불길이 강원도 삼척과 경북 울진군을 가르는 너비 1백~4백m의 가곡천마저 훌쩍 뛰어 넘어 울진군 나곡리 쪽이 불길에 휩싸이자 소방관계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동서로 흘러내리는 이 하천은 인근 마을과 도로 등을 합쳐 길이 8백여m의 평지가 있어 불길이 경북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 으로 여겼던 곳이다.

울진군은 11일 오후 9시부터 직원 8백여명, 군용헬기와 경북도 헬기 7대를 동원, 비상 대기하고 있었으나 강풍을 타고 번져오는 불길을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울진군은 나곡리.검성리.주인리 등 인근 지역 1천3백여가구 3천9백여명을 북면 부구중학교 체육관으로 긴급 대피시켰다.

불길 남하 소식에 전날 밤 잠을 설치며 불안에 떨던 주민들은 대피령이 내려지자 점심식사도 거른 채 몸만 빠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주민들은 걱정스런 모습으로 공무원들에게 산불상황을 물어보는 등 초조해 했다.

그러나 불이 번진 곳이 검성리 등과 반대방향인 나곡리 바닷가 쪽이어서 인명.가축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 산불이 주거지역을 덮쳤는데도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민.관.군의 긴밀한 대처가 있었기 때문. 12일 오전 2시27분 화재 신고를 접수한 뒤 5천여명의 인력을 투입하고, 사이렌과 가두 방송으로 주민을 대피시켰으며 민방위대 동원령이 내려지기까지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다.

○…강릉시 교1동의 최창규 통장은 자신의 집이 타고 있는데도 이웃집을 다니며 주민들을 깨워 인명 피해를 막았다. 이금자(56)씨는 "통장이 깨우지 않았으면 불난 줄도 모르고 자다 큰일 날 뻔했다" 고 아찔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崔통장의 집은 결국 전소됐다.

교동에서는 가옥 20여채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주민 김순예(78)씨는 "펑펑 가스통 터지는 소리가 들려 가재도구 챙기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몸만 빠져 나왔다" 며 발을 동동 굴렀다.

○…춘천지검 강릉지청과 강릉교도소는 12일 새벽 지청과 교도소 옆까지 타들어오는 산불과 한바탕 '전쟁' 을 치렀다.

지청 야간 근무자가 불길을 처음 발견한 것은 이날 오전 3시쯤. 지청과 맞붙은 뒷산 강릉교도소 부근에서 발화한 불길은 순식간에 지청 앞 10여m 부근까지 접근해 왔다. 즉시 소방대원이 출동하고 전 직원이 청사 앞에 집결했다.

직원 일부는 담장 앞에서 불을 끄고 나머지는 수사서류 등 보관 중인 공문서를 모두 안전지대로 대피시켰다.

울진.강릉〓황선윤.고현곤.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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