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몽헌회장 귀국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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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몽헌(鄭夢憲) 현대 회장이 요즘 무척 바쁘다. 국내서 보기가 어렵다.

鄭회장은 지난달 29일 소문내지 않고 중국 베이징행 비행기를 탔다.

현대 그룹의 마지막 경영자협의회에서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이 '단독 현대 회장' 으로 그의 손을 들어준 지 이틀만의 출장. 당시 '황제 경영의 폐해가 드러났다' 며 여론이 좋지 않았고, 정부도 은근히 지배구조 개선 대책을 내놓으라며 현대 그룹을 압박했다.

여간한 일이 아니면 해외 출장을 가기 어려운 상황인데 鄭회장은 중국에 갔다가 이튿날 귀국했다.

그룹 관계자는 '대북 사업을 논의하기 위한 것' 이라고 밝혔고, 대북 사업의 자금 동원을 맡고 있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이 동행했다.

귀국한 이튿날인 3월 31일 鄭회장은 '현대 21세기 발전전략' 을 발표했고, 다시 닷새 뒤인 지난 5일 정주영 명예회장.이익치 회장.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등과 일본으로 향했다.

鄭명예회장은 7일 귀국했는데, 정몽헌 회장은 그날 미국행 비행기를 예약했으나 실제로는 베이징으로 향했다.

鄭명예회장과 함께 귀국한 이익치 회장은 그날 바로 베이징으로 향해 鄭회장과 합류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된 10일, 鄭회장은 베이징에서 서울행 항공편을 예약했다 취소하고 다시 일본으로 가 현재 도쿄에 머물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현대전자의 사업과 관련한 인사를 만나고 있으며, 주말께 귀국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출항을 추진 중인 금강산 관광 유람선 사업과 반도체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는 것.

鄭회장이 이같이 베이징과 도쿄를 왔다갔다 하면서 귀국을 미루자 재계에선 현대가 대북 사업 관련 '큰 건' 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맞춰 현대가 북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을 선점하기 위해 바삐 뛰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베이징은 북한 아태위원회 대표부가 있으며 현대 관계자들이 수시로 아태위원회 사람을 만나온 곳이다.

도쿄는 북한과 일본이 수교할 경우 북한의 대일(對日)청구권 자금 등 든든한 대북사업 자금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터다.

현대는 지난 5~7일 鄭명예회장 일행이 도쿄에서 '일본 자본 유치 활동을 폈다' 고 공식적으로 설명했다.

鄭회장은 이 때 고바야시 게이지 규슈대학 교수, 요시다 다케시 신일본산업 사장 등 현대의 대북사업 중재자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鄭회장은 최근 수행 비서도 없이 혼자서 조용히 움직인다.

호주머니에 한쪽 손을 넣고 다녀 그룹안에서도 그를 '크레믈린 정' 이라고 부른다.

현대를 잘아는 한 재계 인사는 "鄭회장은 일본이 북한에 배상금을 지급하면 그 사용처가 북한 내 사회간접자본 확충일 것으로 보고 현대건설 등의 참여를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따라서 재계는 鄭회장이 대북사업과 관련한 국제 컨소시엄 등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면서 그의 귀국 보따리에 관심을 쏟고 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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