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무표정한 유권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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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일 오후 성남시 분당갑 합동연설회가 열린 분당 돌마초등학교 교정. 연단에 선 후보들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지만 2천명에 이르는 청중들의 호응은 시원찮았다.

특히 이들 유권자는 후보의 연설이 끝날 때마다 무더기로 연설회장을 빠져나가 동원된 사람들이 아닌가 의심하기 충분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 얘기가 그 얘기' 라는 식으로 냉담했다.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이 극치를 이루고 있다. 선거일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여기저기에서 도통 선거 얘기를 들을 수 없다.

"선거공약이니 뭐니 내세워도 결과는 다 똑같았어요. 공약을 제대로 지킨 국회의원 있습니까□" "정치인들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지난해 한햇동안 벌어진 정치인들의 싸움으로'정치에 완전히 식상했습니다. " "우리 지역구에 누가 출마하는지 몰라요. 선거일 당일엔 가족과 함께 교외에 나갈까 해요. "

취재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기존 정치판에 실망해 선거에는 영 관심이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애를 먹는 것은 각 후보 진영이다. 선거 분위기가 조성돼야 바람을 일으키겠는데 유권자들의 반응이 거의 없으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중산층이 집결해 있는 분당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무심(無心)한 표심(票心)을 잡으려고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아파트 상가 앞과 백화점 주변에서 후보는 '나홀로 연설' 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여당 후보는 상가나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악수를 청해도 유권자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투정한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민들이 유세차량을 들어오지 못하게 해 유권자 얼굴도 못보고 쫓겨난 후보도 있다.

이에 한 야당후보는 유세차량 지붕에 자신의 이름과 기호를 크게 써붙이는 꾀를 내기도 했다. 아파트에서 힐끔 내다볼 뿐 도무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유권자들에게 이름이라도 기억시키겠다는 고육지책인 것이다.

"무관심이 도움도 됩니다. 투표율이 낮아야 우리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데 다행히 이번 선거는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 같아 결과를 낙관합니다. "

유세현장에서 한 후보 측근의 '희망 섞인 말' 에 쓴웃음만 나왔다.

홍주연 기획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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