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터뷰] 독일 부퍼탈무용단 단원 김나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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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현대무용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슈.그녀가 이끄는 피나 바우슈 부퍼탈 탄츠테아터에는 한국인 무용수 김나영(36)씨가 있다.정상급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현대무용가로는 거의 유일한 한국인.

김씨는 1996년 이 무용단에 입단한 중견단원이지만 국내 팬들과는 3∼6일 내한공연이 첫 만남이다.

"한국에서 공연하게 돼 너무 기쁘고 고마워요. 특히 바우슈 선생님께요. 피나는 단원을 가족처럼 사랑하시는 분이라 제 조국인 한국 공연에 더욱 애착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

이제는 금의환향한 그이지만 독일행은 힘든 선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거식증에 시달렸던 그에게 중2때 시작한 무용은 인생의 재미를 알게 했지만 애정이 큰 만큼 회의도 많았다.

결국 세종대 무용과 3학년이던 85년 독일로 떠났다. 무용을 그만두려고 독일행을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자신이 싫어했던 것이 무용 생활이지 무용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다음부터는 "춤보다도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고 말할 정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86년 폴크방 무용학교에 입학한 그의 전공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발레였지만 탄츠테아터에 속한 말루 아이도를 만나면서 현대 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바우슈와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이 무렵. 그러나 바우슈는 워낙 신중한 성격이어서 그는 졸업 후 카셀 시립극장,에센 폴크방 탄츠 스튜디오 등에서 활동하며 6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요. 만약 탄츠테아터에 일찍 왔더라면 지금 깨달은 가치들을 못 깨달았을 거여요. "

바우슈를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끊임없는 노력이다. 바우슈의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일단 무용을 비디오로 녹화해 무용수와 함께 보면서 지적해 나간다.

"춤을 추면서 자기가 느끼는 것과 남에게 보이는 것은 다릅니다. 비디오를 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비디오로 다시 보면 창피할 정도죠. "

무용수 개개인의 의사와 개성을 존중하는 바우슈인지라 무용수도 안무에 적극 관여하게 해 김씨도 '유리 청소부(97)' '오 디도(99)' '헝가리(2000)'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남이 만든 작품에 참여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미리 만들어 놓은 배역의 이미지에 최선을 다해 근접해가는 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작은 안무가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안무작업이 더 애착이 갑니다. "

그는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봄의 제전' 과 '유리 청소부' 를 꼽는다. '봄의 제전' 은 대사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적인 춤을 선보이는 작품이라서, '유리 청소부' 는 자신의 안무가 들어가서 더욱 정이 간다고.

"한국에선 무대에 대해 기대도 크고 실망도 크게 하죠. 과정보다는 만들어진 모습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겁이 나요. 저는 거창한 계획으로 출발하기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작업하고 싶거든요. " 작업하는데 제약을 받거나 얽매이는 것은 싫다. 지금 탄츠테아터에 있는 이유도 무엇보다 자신이 추고 싶은 춤을 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다지오 템포의 느린 동작을 좋아하고 기량보다는 영혼이 담긴 공옥진씨의 춤을 사랑한다는 김나영씨. 독신으로 무용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그가 가장 소망하는 춤은 어떤 것일까. "인간의 모습, 그 중에서도 완성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요. 물음보다는 답이 있고, 희망과 감동을 주는 춤이죠. "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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