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기업 '한지붕 감사'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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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시가총액이 2천억원을 넘어선 코스닥 등록기업 J사의 감사가 최근 정기주총에서 바뀌었다.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업체인 이 회사의 감사는 그동안 대표이사의 부인이 맡아왔다. 그 부인은 비상근 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연봉 7천3백만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선임된 감사는 대표이사의 친동생이며 보수한도는 1억원으로 정해졌다.

이처럼 코스닥에 공개된 중소기업 중엔 단란한 '가족경영' 을 꾸려나가는 회사들이 적지 않다.

29일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아들.딸.배우자 등 특수관계인이 회사의 감사를 맡고 있는 기업이 3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유아 생활용품 전문업체인 보령메디앙스는 최근 정기주총을 열고 이 회사 회장의 딸인 金모씨를 감사로 재선임했다.

딸이 아버지 회사의 회계처리가 잘 됐는지 따지는 감사 일을 맡고 있는 것이다.

노래방기기 전문제조업체인 태진미디어의 감사는 이 회사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의 부인이다.

인터넷 보안업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장미디어의 감사자리엔 이 회사 대주주의 장인이름이 올라 있다.

감사는 주식회사의 내부 통제를 담당하는 자리로 주주 입장에서 회사 재산상황의 투명성을 높이고 업무집행 과정을 감독하게 돼 있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자식들이 아버지 회사를, 부인이 남편 회사를 감사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 라고 꼬집는다.

그런데도 이같이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들이 관련 법규정을 십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증권거래법에서는 최근 사업연도말 자산총액이 1천억원 이상인 법인의 경우 한사람 이상의 상근 감사를 둬야 하는데 주요 주주나 상근 임원의 배우자나 부모.자녀 등 직계 존비속은 상근 감사를 맡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산총액 1천억원 미만의 기업들에 대해서는 시가총액이 아무리 많아도 감사 선임에 관한 별다른 금지규정이 없는 것이다.

코스닥의 3백62개 12월 결산법인 가운데 자산총액이 1천억원을 넘는 곳은 텔슨전자.주성엔지니어링.동진쎄미켐 등 40여개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코스닥시장이 거래소를 능가할 정도로 성장했고 기업들의 덩치도 커진 데 걸맞은 투명경영 시스템이 하루빨리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의동(鄭義東)코스닥위원장은 "기업공개 과정을 거쳐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기업들은 공개기업답게 전근대적인 가족경영 체제에서 벗어나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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