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이냐 … 여객이냐 … 파업 길어지자 열차 ‘돌려막기’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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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동조합 파업 4일째인 29일 부산 부산진역 열차 대기선로에 빈 화물열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29일 오후 3시 수도권 수출입화물 물류기지인 경기도 의왕컨테이너기지(ICD) 제1터미널. 철도를 이용해 화물수송을 대행하는 ㈜세방 관계자는 “선적량이 집중되는 월말에 파업이 터져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나마 주말에 코레일이 16대(상·하행 각 8대)를 긴급 배정해줘 조금 숨통이 트였다”면서도 “아직 광양·부산으로 내려보내야 할 컨테이너가 300TEU 이상 적체돼 있어 안심하긴 이르다”고 덧붙였다.

#같은 시각 서울역. 전석주씨는 “가족들과 부모님 댁에 왔다 내려가려 한다”며 “그런데 열차가 없다고 한다”며 황당해했다. 전씨는 이날 오후 7시20분발 부산행 새마을호를 예약했다. 전씨는 좀 더 이르게 출발하는 열차를 탈 요량으로 서울역에 나왔다. 그러나 해당 열차의 운행은 취소됐다. 그렇다고 다른 열차편 표를 구할 수도 없었다. 이날 전씨처럼 운행이 취소돼 열차를 놓친 승객은 4000여 명인 것으로 코레일은 집계했다. 서울역 창구에선 이에 항의하는 승객으로 하루 종일 고성이 끊이지 않았다.

29일 여객열차 운행 차질을 알리는 전광판 아래로 서울역에 도착한 승객들이 역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근 기자]


철도노조의 파업 나흘째인 29일 물류난은 일부 해소됐다. 반면 승객들은 열차를 타지 못해 발을 굴러야 했다. 여객열차를 운행하던 인력을 화물열차로 돌린 탓이다.

국토해양부 백승근 철도운영과장은 “29일에는 파업 초기 5~10% 정도 운행하던 화물열차를 대폭 증편해 수출화물이 담긴 컨테이너 적체를 해소했다”고 말했다. 이날 코레일이 운행한 화물열차는 68편으로 평상시의 26.5%였다. 그러나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의 운행은 각각 30편과 120편을 줄였다. 평소 대비 60% 수준이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코레일은 이날 하루 동안 필수유지인력 9600여 명과 퇴직자나 군인 등 대체인력 4200여 명을 투입했다. 평소 운용인력 2만5000여 명의 55% 수준이다. 코레일 측은 “대체인력의 피로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며 “이번 주 초부터 이들에게 휴식을 줄 수밖에 없고, 그러면 운용인력은 더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여객과 화물열차 모두 운행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평소 40~50% 정도의 탑승률을 보이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 승객들을 돌려 하루 10만여 명을 수송할 계획이다. 화주에게는 화물차를 긴급 연결해줘 대체 운송하도록 할 방침이다.

코레일 측은 "노조 파업으로 코레일의 영업손실은 26~28일 사흘 동안에만 37억여원”이라고 밝혔다. 여객과 화물수송 매출의 감소, 대체인력 투입비 등이다.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여객과 물류수송 차질에 따른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은 “노조의 습관적인 파업 관행과 불합리한 제도를 반드시 바로잡겠다”며 “철도파업에 따른 불편에 대해 국민들께 이해를 구하고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파업을 풀지 않으면 협상도 없다”는 원칙도 재천명했다. 노조가 28일 ‘협상을 재개하자’는 공문을 보냈지만 회신하지 않은 이유다.


철도노조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백남희 선전국장은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공기업 선진화로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협을 해지해서 파업한 것”이라며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면서 실제로는 인원감축을 강요하고 있는 이상 파업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코레일이 18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데 맞서 허준영 사장을 대전지방노동청에 부당노동행위로 28일 고소했다.

장정훈·홍혜진 기자, 부산=송봉근·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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