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주겠다는데 … 발로 차는 복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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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부터 2010년도 예산안 심의에 돌입한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선 의원들과 보건복지가족부 사이에 보기 드문 실랑이가 열흘째 계속되고 있다. 중증장애인연금제도 도입을 위한 예산을 “늘려주겠다”는 복지위원들과 “그러지 말아 달라”는 복지부의 대치다.

예산 증액을 해당 부처가 사양하는 건 드문 경우다. 실랑이에 불을 붙인 건 전재희 복지부 장관이었다. 지난 13일 복지위에 출석한 전 장관에게 민주당 박은수 의원은 “복지부가 당초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예산(3115억원)만큼 복지위원들이 증액을 해주면 예결위에선 장관이 이를 지켜낼 의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 장관은 “책임을 못질 것 같다”며 “그렇게 증액하다가는 연금제도 도입도 안 될 것 같아 기획재정부와 부처 간 합의로 감축안(1474억원)을 내놨다”고 답했다. “여기 와서 다시 늘리려 노력하기에는 부처 간에 신의 문제가 있어 어렵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중증장애인연금은 장애수당을 없애는 대신 약 33만 명의 중증장애인에게만 월 최고 15만원을 주는 제도다. 복지부는 내년 7월 도입을 목표로 3115억원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했지만 1474억원만 반영됐다. 그러자 장애인 의원들은 “장애수당이 사라지면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던 장애수당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장애인 차량에 대한 LPG 보조가 사라지는 걸 감안하면 소득보전 대책이 축소되는 셈”이라며 증액을 추진해 왔다. 박 의원은 “증액을 거부하는 장관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4대 강 예산 때문에 기획재정부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아 눈치를 보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일은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벌어졌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서 진술할 때 아동심리전문가를 배석하게 하려는 예산 때문이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가 다섯 차례나 진술을 반복하면서 심각한 2차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필요성에 여야가 공감하는 예산이다.

경찰청은 3500만원을 책정했다가 민주당 김유정 의원 등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김 의원은 “지난해 13세 이하 성폭력 피해자가 1220명”이라며 “한 차례씩 진술해도 2억원 이상의 돈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수요가 많지 않다” 는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결국 예산은 1억원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김 의원은 “수사 과정에서 겪는 어린이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경찰의 몰인식에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그는 14살과 10살짜리 두 딸의 엄마다.

지난 19일 환경노동위원회에선 노동부 실무자 한 명이 혼쭐이 났다. 한나라당 이화수 의원은 “보좌관들한테 노동부 사업이 너무 많아 집행률이 저조하니 예산 좀 깎아달라는 이야기를 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다그쳤다. “사실이 아니다”라던 실무자는 이 의원의 질책이 계속되자 “죄송하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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