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상관관계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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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오는 4월3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제주에서 서울까지'라는 부제로 '2000 오케스트라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번 축제에서 눈에 띄는 것은 13개 교향악단 중 마산·대구·수원·대전·포항시향 등 무려5개의 오케스트라에 상임지휘자가 없어 지휘자 기근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를 계기로 시대마다 달라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비유를 살펴본다.

오케스트라의 본디 무대와 객석의 중간지점을 가리키는 말. 지금도 오페라극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자리는 중간지점이다.

17세기에는 이곳에서 연주하는 악사들의 집단(앙상블)이라는 뜻으로 확대됐다.

오케스트라가 비유의 상징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7세기. 일사불란한 국가의 행정조직.사회구조.군대에 비유됐다.

1699년 프랑스의 저술가 샤를 뒤프레니는 절대왕정을 오케스트라의 메커니즘으로 풀이했다.

홍두깨 같은 막대나 종이 두루마리로 바닥을 내리치며 박자를 맞추는 지휘자의 모습에서 절대군주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모든 것은 오케스트라의 주권(통치)에 달려 있다. 왕의 권력은 그가 종이 두루마리로 된 홀(笏.왕이 쥐고 있는 지팡이)을 올리고 내리면서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조종한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오케스트라는 시민사회, 지체(肢體)들로 구성된 유기체로 묘사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사회적 위계구조나 화합의 상징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면 미리 계획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돌진하는 군대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초대 총재를 지낸 문명비평가 자크 아탈리는 '음악의 정치경제학' 에서 베를리오즈의 '지휘법' 을 몇 단어만 바꾸면 정치학 이론과 다름 없다고 말한다.

"지휘자는 모든 단원이 보이는 위치에 있어야 하고 단원 수가 늘어나면 지휘대도 높여야 한다.

그의 얼굴 표정은 영향력과 직결된다.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볼 수 없거나 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요즘에는 오케스트라를 '거대한 악기' '공장' 에 비유한다.

영국의 미학자 루이스 멈퍼드는 "악기의 종류와 수효가 늘어나면서 공장의 노동분화에 맞먹는 교향악단의 분업이 이루어졌다.

지휘자는 제품, 즉 음악의 제작과 조립을 책임지는 감독이자 생산관리자, 작곡가는 발명가.기술자.설계자에 해당된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집단적 효율성, 기능적인 분업, 지도자와 피지도자 간의 상호협동으로 새로운 사회의 이상적인 유형을 만들어낸다" 고 말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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