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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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66) 서슬 퍼런 미국

경수로(輕水爐)핵연료 국산화사업에 참여를 희망한 미국의 세 회사 모두 경쟁에서 탈락하자 미

국측은 심하게 반발했다. 1985년 8월 하순 앨런 세섬 미 국무부 핵(核)감시국장이 한국에너지연구소(한국원자력연구소 전신)로 급히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혼자만 온 게 아니라 6명의 핵전문가들을 대동했다.

전직 주한미대사가 나를 찾아와 항의한지 불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한마디로 이들은 서슬이 시퍼랬다. 마치 범죄수사를 하러 온 조사관 같았다. 왜 우리가 세계 최고의 원자력 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사(社)를 비롯한 미국 회사들을 떨어뜨리고 굳이 독일의 카베유사를 기술도입선으로 선정했는지 그 이유를 캐물으러 온 게 분명했다.

특히 세섬 국장은 예전부터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 개발을 견제한 장본인으로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비록 흑인이지만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핵물리학 교수를 지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에너지연구소가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미국의 일류대학 출신 박사들이 그렇게 많으냐" 며 따졌다. 그의 말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나는 가급적 맞대응을 자제했다. 대신 우스개 소리로 "인간의 3대 기본 욕구중 첫번째가 무엇인지 아느냐" 고 물어보았다.

내가 슬쩍 예봉을 피하며 엉뚱한 질문을 하자 그는 어깨를 치켜들며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프리덤(자유)" 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즉시 "당신은 대학교수 출신이지만 낙제" 라고 말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그러면 뭐냐□" 고 되물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놓았다.

"인간의 첫번째 기본 욕구는 먹고 사는 거야. 의식주란 말이야. 이 문제가 먼저 해결되야 그다음 자유에 대해 논할 수가 있어. 그런데 에너지는 의식주에 절대적으로 중요해. 예컨대 밥을 지어 먹으려면 불이 있어야 해. 또 전기가 없으면 생활하기가 너무 불편해. 이처럼 의식주와 에너지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가 없어. "

내가 기탄없이 소신을 얘기하자 세섬 국장도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이 하나도 없는 나라야. 석유 한 방울 안 나와. 석탄도 저질탄 밖에 못 써. 이런 상황이니 우리로서는 어떻게든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야 해. 에너지는 우리의 생존권과 관계된 거야. 생존권이 걸려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것은 당연하지. "

세섬 국장은 내 설명을 듣더니 에너지연구소에 왜 미국의 일류대학 출신이 그렇게 많은지 이해가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사업에 입찰한 미국 회사들을 모두 떨어뜨린 것은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내가 알아듣게 설명했음에도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이었다.

그를 비롯한 미국의 핵전문가들은 에너지연구소와 핵연료주식회사 시설들을 샅샅이 둘러보면서 "뭐 하는 데 쓰는 거냐" 며 꼬치꼬치 캐 물었다. 경수로 핵연료사업의 기술도입선을 독일로 결정한 데 대한 일종의 보복 이었다. 당시 나는 에너지연구소장과 핵연료주식회사 사장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그같은 그들의 행동은 나에 대한 경고이자 시위이기도 했다.

그들은 3일간 감사 아닌 감사를 했다. 나는 세섬 국장에게 "당신이나 나나 물리학자인데 같은 학문을 한 사람으로서 우리 학자로 돌아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며 그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는 왜 우리가 원자력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이룩하려는지 우리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얘기했다. 변화의 낌새가 보였다.

한필순 전원자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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