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뛰는 선거 브로커…신고는 한건도 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브로커는 득실대는데 신고는 없고…. " 서울 S경찰서 수사과 직원들은 선거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얼마전 이들은 "선거브로커 조직이 모 정당의 지구당을 상대로 '표몰이' 를 대가로 거액을 요구, 지구당위원장이 난감해 하고 있다" 는 구체적 첩보를 입수, 해당 지구당으로 출동했다.

그러나 지구당 관계자는 "절대 그런 일 없다" 며 함구로 일관, 그냥 돌아서야 했다.

4.13총선은 브로커 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후보들이 표를 잃을까봐 신고를 꺼리고 있다.

본사 취재팀이 서울 45개 선거구의 1백여 지구당에 전화로 문의한 결과 80여곳이 "선거 브로커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고 응답했다. 하지만 15일 현재 전국의 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서에 접수된 브로커 신고건수는 단 한건도 없는 실정이다.

◇ 활개치는 브로커〓1998년 6.4지방선거 때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영향으로 주춤했던 선거 브로커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전성시대' 를 맞고 있다. 입당원서를 받아주겠다고 유혹하거나 매표(賣票)를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전통적 방식부터 신종 사이버브로커 형태까지 등장했다.

브로커들에게 시달린 출마예정자들이 공천을 반납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지구당 간판을 내걸자마자 브로커들이 몰려들어 돈을 요구하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며 "자기네가 관리하는 조직을 보여주며 수억원 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 말했다.

◇ 곤혹스런 선관위.경찰〓브로커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있는 선관위와 경찰은 후보들의 신고의식 부재로 단속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선관위 윤원구(尹元求)지도과장은 "신고.제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은 상태" 라며 "브로커 피해에 대해 털어놓는 후보들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고 말했다.

중앙선관위는 브로커 단속실적이 저조하자 지난 3일 아예 서울.경기.전북 지역에 10명의 암행감찰반을 파견했다. 선관위 직원들은 잠복근무를 한 끝에 간신히 2건의 브로커 사범을 적발했지만 해당 지구당에선 아직도 "그런 일 없다" 며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 신고 왜 안하나〓후보들은 브로커들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자칫 방해꾼으로 돌변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서울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신고하면 흑색선전이나 음해공작에 나설까 솔직히 두렵다" 고 털어놓았다.

총선시민연대 김기식(金起式)사무처장은 "후보자들의 신고문화를 만드는 게 선거개혁의 출발점" 이라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시급하다" 고 말했다.

사회부 총선팀〓이상복.박현선.배노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