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줄 시비에 … 쳐다본다고 … 살인 절반은 홧김 ‘욱 범행’

순간적으로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해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는 ‘욱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오래 쌓인 원한도, 계획도, 금전적 목적도 없는 ‘우발적 범죄’다. 전문가들은 ‘욱 범죄’를 일으키는 범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의 경제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가 욱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욱 범죄자’는 폭력적 외톨이=본지 취재팀은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와 함께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우발적 살인 5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범인들은 세 가지 공통점을 보였다. 이들은 모두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대화가 거의 없는 외톨이였고 ▶직업이 없거나 일정치 않았으며 ▶평소 폭력적 성향을 보이거나 도박·게임 등에 중독된 증세가 있었다.

이 교수는 이런 공통점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외톨이는 평소 다른 사람을 배려해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본 경험이 많지 않다.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을 억눌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반인들이 화가 난다고 상대방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치르게 될 대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책임져야 할 가족이나 잃을 직장이 없는 사회적 외톨이는 범죄에 대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5명의 살인범 전체가 평소에도 상습적으로 크고 작은 폭력을 휘두르는 등 충동 조절 장애 증세를 보인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이창무 교수는 “작은 자극을 참지 못하고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충동조절장애는 그 자체가 범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병”이라며 “이들이 평소 폭력이나 도박 및 게임 등에 중독 성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컸다”고 설명했다.

◆경쟁적 사회 환경이 범죄 양산=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 우발적 살인·강도·방화·강간 사건의 비중은 24%(2003년)에서 36%(지난해)까지 늘어났다. 99년만 해도 우발적 강력 사건의 비중은 21.5%에 불과했다. 특히 살인 사건은 욱 범죄의 비중이 높다. 올 상반기 전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664건)의 절반 이상(364건, 54.8%)이 우발적 살인이었다. 5만원을 딴 친구가 도박을 그만하자고 했다고 죽이거나(1월 서울 용산), 자신을 돼지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포장마차 주인을 살해한 것(6월 경북 군위) 등이다.

전문가들은 경쟁적 사회 분위기가 분노 조절에 장애를 일으키는 사회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가족중심주의의 해체 ▶지나친 경쟁을 문제로 꼽았다. “번듯한 직업이 없는 이들은 자신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껴 괴로워하는데, 이를 달래줄 가족이 없으니 엉뚱한 데서 분노를 표출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수정 교수는 “외톨이나 소외계층 중 일부는 자신은 사회의 피해자이고 다른 이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망상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망상이 심해지면 ‘내가 그들을 응징하겠다’는 식으로 생각해 범죄를 저지른다”고 분석했다.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을 용인하는 문화가 일정 부분 부작용을 낳았다는 분석도 있다. 세브란스 정신과 김어수 교수는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우리 사회 분위기가 ‘억제·자제’보다 ‘표출·행동화’ 등을 장려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어려서부터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을 받지 못한 이들이 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직도 50, 60대 여성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속으로만 삼키다 생긴 ‘홧병’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지만, 젊은 층은 분노 조절이 안 돼 병원을 찾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임미진·이정봉·이현택 기자

◆충동조절장애=미국 정신질환진단 통계편람 은 ‘해를 끼칠 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자신이나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자신의 마음이나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급하게 반응한다. 공격적 충동이 조절되지 않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가 대표적. 병적 도박, 병적 도벽, 발모광(몸의 털을 마구 뜯는 행동)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