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숨은 화제작] '블루 인 더 페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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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사람들은 뉴욕을 꿈꾼다. 낮에는 잊을 수 없는 로맨틱 영화의 배경이 됐던 골목을 거닐고 밤에는 브로드웨이에서 '레미제라블' 이나 '미스 사이공' 같은 뮤지컬을 한편 본다는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이들에게 뉴욕은 자유의 공간이며 동경의 대상이다.

그럼 실제 뉴요커의 생활은 어떨까. 이들에게 뉴욕은 일상이며 오히려 벗어나고픈 공간이다.

이 영화는 브루클린의 한 담배 가게에 설치한 몰래 카메라 같다. 가게를 찾는 록가수와 설문조사지를 들이미는 조사요원, 일상에 지쳐 라스베가스를 갈망하는 가정주부와 싸구려 물건을 파는 흑인 보따리 상인 등을 통해 뉴요커의 일상사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1994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스모크' 의 속편. "장 르누아르와 오즈 야스지로, 에릭 로메르의 장점을 합쳐 놓았다" 는 평을 받았던 웨인 왕 감독이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

"여기저기 자살방지 포스터가 붙은 스웨덴과 달리 뉴욕은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는 대사처럼 접근 방식은 '조이럭 클럽' 과 비슷하다. 중국계 미국인 사회가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바뀐 것과 다큐멘터리 기법을 도입한 것을 제외하면 그렇다.

허름한 동네 담배가게를 찾는 어수룩한 손님들의 면면이 만만찮다. 마이클 제이 폭스가 설문지를 돌리고 '천국보다 낯선' 의 짐 자무쉬 감독이 담배를 끊으려는 영화제작자로 출연한다.

또 '벨벳 언더그라운드' 의 멤버였던 록가수 루 리드가 간간이 등장해 특유의 뉴욕 악센트를 선보이고 마돈나가 율동을 곁들인 전보 배달원으로 등장한다. '택시 드라이버' '피아노' '펄프픽션' 등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쳤던 하비 케이틀이 담배가게 점원을 맡았다. 굳이 극영화 형식을 취하지 않은 점이 일상의 자잘함을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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