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충돌론' 비판한 하랄트 뮐러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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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시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강조되어 온 '아시아적 가치' 는 권위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이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시아의 인권 개선을 방해하고 있어요. 이제는 아시아 각국이 이를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세계적인 안보정책 전문가이자 평화연구가인 하랄트 뮐러(헤센 평화 및 갈등연구소장)독일 프랑크푸르트대 교수. 그는 '문명의 충돌' 로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킨 새뮤얼 헌팅턴의 이론을 강하게 비판해 화제를 모았다.

그 이론을 담은 '문명의 공존' (푸른숲)의 국내 출간에 맞춰 방한한 뮐러 교수를 지난 25일 저녁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 센터에서 정보사회학회 토론회가 끝난 후 만났다.

그가 꺼낸 화두는 아시아적 가치. "90년대 들어 아시아적 가치가 돌연 상승 무드를 타는 것이 대단히 의문입니다. 저마다 다른 문명의 국가들이 통일된 하나의 아시아적 가치를 선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 논의를 그 시발부터 문제가 있다며 강도높게 비판한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나온 아시아적 가치는 싱가포르의 리콴유,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같은 정치가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회가 다원화하고 시민의 요구는 거세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를 추스리기 어렵게 된 거죠. 그래서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워 이를 통제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의 경우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각 분야에서 아시아적 가치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다" 고 말했다. 그가 한반도 내에서 문명의 공존을 가로막는 요소로 첫손에 꼽는 것은 남북한의 갈등.

"남북한 군사갈등은 문명 간이 아니라 문명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예" 라는 그는 "북한은 유교 문화권인 한반도에 혼란을 초래했으며 아직도 권력 유지를 위해 그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고 분석한다.

군사전략 전문가이지만 여성의 지위에 관해서도 견해가 뚜렸하다. 여성의 지위 향상이 문명의 민주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는 전체적인 경제력 향상과 직결'되며 곧 어린이들의 나은 교육환경 개선과도 연결'된다고 본다.

"여성의 지위향상은 21세기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차별을 받는 집단 중 가장 큰 집단이 여성들이며 모든 문명의 공통 문제인 만큼 국경을 초월해 연대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분석은 명쾌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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