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 유럽 순방국 주한 외교사절 초청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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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일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3국 순방에 나선다. EU는 한국의 둘째로 큰 무역상대이고, 한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북한과 정치대화와 외교관계 수립 등으로 급속한 관계정상화를 꾀하고 있다. 서울주재 3국 외교사절과 함께 金대통령의 이번 순방이 갖는 의의를 점검해본다.

참석자:클라우스 훨러스 주한 독일 대사

카를로 트레자 주한 이태리 대사

필립 오티에 주한 프랑스 정무참사관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원장

사회:김정수 본사전문위원

-김정수:정치상황 등으로 볼때,김 대통령이 한국에 있어야 할 시기인 것 같은데,EU를 순방해야 할 이유는 뭘까.

-이경태 원장:김대중 대통령이 여러나라를 방문했지만,유럽은 지난 ASEM회의때 영국을 방문했을 뿐 방문이 없었다.

-이태리 대사:그렇다.김대통령이 강대국 중에 미국·중국·일본·러시아를 방문했으니,이번에 EU를 방문함으로써 ‘강대국과의 전략적 관계 구축을 완결 짓는다’는 의미가 크다.

-독일 대사:EU는 한국에게 미국 다음으로 큰 경제협력 파트너다.특히 EU는 신속한 금융지원으로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나름대로 기여했고,장기적으로도 EU와 한국간의 경제관계가 확대·심화되고 있다.

-이태리:97년말 긴급지원자금을 마련할때,또 98년초 한국이 유리한 조건으로 뉴욕 외채상환 협상을 타결하는데에 유럽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김:김 대통령의 순방에 대한 유럽의 시각은.

-이태리:이태리로서는 1884년에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이번이 첫번째 국빈방문이다.만시지감(晩時之感)이 든다.

-독일:박정희 대통령 이래 모든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고 또 여러 독일 대통령이 방한을 했다.특히 김 대통령은 이미 야당지도자 때 독일을 방문해,그의 민주화 노력에 대해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이들 지지자와의 해후도 중요하다.

-프랑스 참사관:김 대통령은 국제외교사회에서 목소리가 큰 지도자의 하나다.특히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인권·민주화·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펼친 지도자다.그의 이런 철학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하다.

또 가을에 김 대통령이 주최하는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의 주요 파트너와 사전에 의견교환을 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첫번 ASEM회의는 출범의 의미가 있었고,두번째 회의는 아시아가 경제위기에 빠져 있을 때 열렸다.올해 서울회의는 경제위기를 극복한 시점에서 열리기 때문에 21세기의 유럽과 아시아간의 관계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회의다.

-이태리:ASEM회의에 참석하는 국가의 반은 EU국가들이다.지난 런던회의에서도 김대통령은 유럽과 아시아 간의 중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유럽이 한국에 대해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그것은 유럽이 한국의 장기적 잠재성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독일:그렇다.한국에 대한 유럽의 투자는 단기적으로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보다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이해를 염두에 둔 투자다.유럽이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태리:이태리 산업의 뼈대는 중소기업이다.반대로 한국은 대기업이 산업의 중심이다.양국 정부가 협력한다면 이렇게 상호보완적인 구조를 가진 양국간의 산업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잠재성이 크다.

-독일:독일의 중소기업이 혁신과 유연성 면에서 가진 장점을 고려할때,양국의 중소기업들간의 전략적 제휴가 중요하다.중소기업들이 접촉하고 협력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중소기업협력 시장’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김:산업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프랑스:양국 경제협력에 ‘위조’문제가 장애다.지적재산권 보호를 더 강화해야 한다.

-독일:정부가 할 일은 시장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협력에 장애가 되는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나머지는 기업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쌍무간 통상에서 자주 접하는 문제는,한국측에서 솔직한 대화를 꺼리는 것이다.협상테이블에 문제를 털어놓고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며 논의를 회피하니,논의가 진전되기 힘들다.

-이태리:또다른 현안은 조선문제다.한국의 조선부문이 과잉시설 때문에,특히 유럽에 대해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쓰러지던 조선사를 정부가 살려놨다.기업의 퇴출여부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

-독일:의료보험 때문에 독일 의약품의 공급가를 너무 낮게 산정하고 있다.의약품 개발비용을 인정하지 않아서다.진출했던 독일의약회사가 철수하는 사례도 있다.의료보험에 묶이지 않는‘개방가격’이 돼야 한다.

-김:EU가 98년부터 북한과 정치대화를 시작한 후,북한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독일:최근에 와서 북한이 ‘고립주의’가 북한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그러나 EU와 북한간의 대화가 새로운 차원으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김:올해 이태리가 북한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그 배경은.

-이태리:미·북한 간의 핵협상 타결 등 이태리는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의 여건이 성숙됐다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정부와도 긴밀히 협의를 하고 지지도 받았다.

-김:독일과 프랑스는 북한과 외교관계 수립을 아직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독일:북한의 입장에 변화를 감지했지만,외교관계를 수립하기에는 특히 대외개방과 (주민을 위한)합리적 경제정책의 추진 면에서 아직 변화나 여건의 성숙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프랑스:우리는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등 국제규범과 의무의 준수를 기다리고 있다.

-김:한국정부로부터 북한의 인권상황과 외교관계수립을 연계하라는 조언을 받지는 않았는가.

-이태리:그런 조언을 받지는 않았다.다만 “북한과 대화가 남·북한의 공식적 대화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조언은 받았다.즉,“한반도의 문제는 남·북한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이번 방문으로 규장각 도서가 반환되는가.

-프랑스:김 대통령의 방문과 도서반환과의 관계는 아직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현재 양국 정부가 지명한 두 명의 대표가 다양한 수준의 방안을 협의 중이다.

-이:김 대통령은 유럽의 복지제도에 관해 관심이 많다.

-독일:한국과 유럽의 복지문제는 다르다.유럽 스스로가 빠져 나오려는 복지제도를 한국에 권하기는 힘들다.독일의 경제체제와 복지제도에 관해 자체 비판도 많다.

-이태리:사회적 합의도출을 위한 노·사·정 3자의 역할에 관한 유럽의 경험도 중요할 것이다.

-이경태:김 대통령은 지역통합에 대한 유럽의 경험에도 관심이 많다.최근 한·중·일 3국간 지역통합을 모색키 위한 ‘동아시아 비젼그룹’을 만들었다.그런데 문화·경제발전단계·정치체제 등 이질성 때문에 동북아 국가간 통합의 길이 험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공동이익이 있으면 정치적 이질성 등은 극복될 수 있다.

-이태리:동질적이라는 유럽도 지금의 통합을 이루는데 50년이 걸렸다.중요한 것은 통합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다.

-프랑스:동북아의 경제통합에는 정치적 의지,특히‘평화에 대한 여망’이 긴요하다.

정리: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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