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두 얼굴을 지닌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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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 결승> ○ 박영훈 9단 ● 왕야오 6단

제8보(97~107)=왕야오가 97에 붙이는 순간 박영훈은 98로 돌아섰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97로 인해 A의 시한폭탄이 재깍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 ‘참고도 1’ 백1로 응수하면 2도 선수. 여기서 흑4로 빠져나오면 14까지 깨끗하게 봉쇄당하고 만다. 하변까지 빙 돌아간 대마가 포위되는 것인데 설령 목숨을 구하더라도 이건 대망이다. 상변이 몽땅 흑집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한데 98은 A로 빵 따내는 것이 두텁고 시원하지 않을까. 103도 선수로 듣고 귀찮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98로도 ‘참고도 2’에서 보듯 흑이 움직이는 수가 없다면 A보다는 98이 집으로 유리하다. 집에 민감하다는 것, 그것은 때로는 약점이 되고 때로는 장점이 된다. ‘집(실리)’이란 존재 자체가 ‘돈’과 마찬가지로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너무 밝히면 엷어지고 너무 외면하면 허세만 남아 바둑을 지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98은 평범하지만 집의 맥을 정확히 짚은 수였다(이 판은 98로 인해 막판 대파란이 일어나게 된다). 손 뺐기 때문에 99의 쓰라린 한 수를 당했고 102, 106의 도주도 황망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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