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욕] 美 대학 실용학문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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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텍사스주 텍사스 크리스천대는 최근 전자상거래(e-commerce)개론을 정식 학과목으로 채택했다.

전자상거래의 개념에서부터 이를 실생활에 응용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 3학점짜리 이 과목엔 80명의 학생들이 수강 중이다.

카네기 멜론 경영대는 향후 18개월 동안 미국에서 전자상거래 과목을 개설하는 학교가 50개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대학가에 '신 실용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적인 이론 중심의 학문보다 현대 사회를 살아나가는데 유용한 실리적인 지식을 얻는 게 더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휩쓸고 있는 것이다.

뉴욕주 사우스 햄프턴대는 '금전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는 방법과 효과적인 신용카드 사용법' 이란 과목을 지난 가을학기 교양선택 과목으로 등장시켰다.

수강신청자가 정원(60명)을 훨씬 넘어 2백40명이나 몰리는 바람에 대학측은 강의실을 재배정하는 등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대는 올 가을 신학기부터 '현대사회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 이란 과목을 개설한다.

"고도의 물질문명 사회가 도래하면서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새로운 아버지의 상(像)이 무엇인지를 찾아봐야 할 필요가 분명히 생겼다" 는 게 학교측이 밝힌 이 과목의 개설 이유다.

그뿐 아니다. 일부 대학들은 '인터넷을 통한 값싼 물건 고르는 법' '효율적인 자동차 관리법' 등도 새로운 학과목으로 개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이 흥미도 보이고 실용적이기도 한 마당에 과거처럼 난해하고 심오한 학문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해서 정식 과목으로 채택하지 못할 게 뭐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신 실용주의' 움직임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일부 명문 사립대는 "아무리 현대사회의 메커니즘이 급격히 변하지만 '신 실용주의' 학문들처럼 대학교육이 수반해야 할 연구가 필요없는 단순한 지식전달이나 기능학습 차원의 과목을 커리큘럼으로 채택할 수 없다" 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과거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측과 대학이 유지해왔던 오랜 틀을 실용주의의 이름으로 깨뜨리려는 세력과의 갈등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이제는 대학만이 진보와 발전의 표상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외부 변화가 대학의 변화를 앞지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대학들이 이런 변화를 어떻게 흡수해 나갈지 세계의 대학과 대학인들이 주시하고 있다.

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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