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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발효, 지금이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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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동안 미국 내에서 FTA 등 통상이슈는 최대 정치 현안인 의료개혁법안과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의료개혁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한층 강화되었다. FTA 등 통상 현안을 챙길 여유도 생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미국 의회 및 업계 내에서도 한·미 FTA 비준을 위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월리 허거 미 하원의원(공화당)은 한·EU FTA가 한·미 FTA보다 먼저 발효될 경우 미국의 대(對) 한국 수출이 8%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기초로 한·미 FTA 비준을 압박하고 나섰다. 민주당 내에서도 애덤 스미스 하원의원이 민주당 및 공화당 의원 88명의 서명을 받아 한·미 FTA 비준 촉구 서한을 백악관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미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7월에서 9월까지 161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미 FTA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73.9%가 ‘적극 지지’를 표명했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 한·미 FTA 조기 발효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FTA 허브’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EU FTA가 발효될 경우 아시아 시장이 친(親)유럽화되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미국 제품이 이들 시장에서 외면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FTA가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8년 이후 내수경기가 침체되면서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90% 이상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무역이 경제 활성화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따라서 우리 기업의 최대 전략시장인 미국과의 FTA는 무역을 통한 우리 경제 활성화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 자명하다.

한·미 FTA의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관세 철폐에 있다. 미국의 산업별 평균관세율은 4.9%로, FTA 발효 시 그 정도만큼 가격경쟁력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또한 반덤핑 규제 완화, 통관절차 간소화 등 미국의 비관세 장벽을 완화해 우리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겪는 애로를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최근 미국의 경기부양책 시행으로 주목받고 있는 1조500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조달시장의 문턱도 FTA로 인해 낮아지면서 대부분의 조달시장이 국내 기업에 개방된다.

이러한 FTA의 효과는 최근 대미 수출 통계를 들여다보면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 경기의 침체로 올해 들어 대미수출이 20% 이상 감소하고 있으나 자동차·가전제품 등 우리 주력 수출품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불황기 미국 시장의 재편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 변화를 적절히 공략한 데 따른 것이다.

한·미 FTA가 조속히 발효돼 약간의 가격 및 비가격 경쟁력만 제고된다면 이러한 시장점유율 증가는 미국 경기 회복 시 더 큰 폭의 수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의 문턱에 접어들고 있다.

경제위기로 변화된 미국 시장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미 FTA는 이러한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비책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FTA 비준 논의가 본격화돼 조기 발효되길 기대해 본다.

홍순용 KOTRA 북미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