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상부 지시 없인 못 움직여 우발적인 도발로 보기는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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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마디는 단호했다. 하루 전 발생한 북한 해군 도발 사태에 대해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간 첫 해상 교전인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 당시 2함대 사령관을 지낸 박정성(61·사진) 예비역 해군 소장. 박 제독은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관계에서 가장 긴장이 감도는 지역이 북방한계선(NLL)”이라며 “어떤 계기나 상부의 지시가 없이는 북한 군이 움직이기가 불가능한 만큼 우발적 도발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이 왜 7년 만에 서해에서 도발을 한 것으로 보는가.

“우리 식 사고로는 풀리지 않는다. 과거 햇볕정책을 추진한 정부에서 북한은 서해 도발로 재미를 봤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때문에 남북 충돌이 이뤄졌다는 점을 부각시켜 남한 내 갈등을 조성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공갈을 한 측면도 있다.”

-북한 경비정이 뻔히 당할 줄 알면서도 경고 방송까지 무시하며 NLL을 침범한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북한 군의 관점은 우리와 다르다. 몇백만이 굶어 죽어도 꿈쩍 않는 정권이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만이 살 길인데 합리적이지 않은 (상부의) 도발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앞서 두 차례의 연평해전(연평도 인근)과 달리 이번에는 대청도 인근 수역에서 교전이 일어났다. 차이점을 뭐로 보나.

“1, 2차 해전이 벌어졌던 연평 해역은 남쪽으로 트여있는 데 반해 이번 교전 지역은 우리 대청도와 북한 옹진반도 사이의 수역이다. 폭이 20㎞밖에 안 된다. 이 중간을 NLL이 통과하고 있으니 북한 경비정이 2.2㎞를 넘어왔다면 대청도에 8~9㎞까지 접근했다는 얘기다. 우리 군 시설과 민간 거주지가 코앞에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의 대응은 더 단호하고 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도발과 관련해 황해도 지역을 관할하는 북한군 김격식 4군단장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북한 서해함대사령부와 4군단의 관계는 어떤가.

“서해함대사령부에는 이번에 격퇴당한 북한 함정이 소속된 8전대를 비롯해 4개의 전대가 있다. 함정에 대한 명령은 평양의 해군사령부와 남포의 서해함대사가 맡는다. 다만 해안포와 지대함 미사일은 4군단장이 지휘한다. 상호 협조가 이뤄지는 체제다.”

-우리 군이 사상자 없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던 요인은.

“북한 함정과의 접근으로 위험에 노출됐던 차단 기동을 없애는 등 과거 5단계의 작전 절차를 3단계로 줄인 게 주효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 2차 연평해전 당시에는 선제사격을 말라고 해 우리 장병의 안타까운 피해가 생겼다. 2함대사령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올 초부터 전비 태세를 다져온 것도 평가할 만하다.”

-북한이 조용하다가 뜻밖의 시점에 도발을 한 것 아닌가.

“짖는 개는 물지 않는 것 아닌가. 때린다고 위협할 때보다 조용한 시점이 더 위험하다.”

-북한 해군은 이번 패퇴로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는데.

“1, 2차 연평해전 때는 근접 전투라 적 사상자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3㎞ 거리에서 교전했으니 식별이 곤란했을 것이다. 1차 연평해전의 북한 사상자는 140여 명, 2차 해전은 20여 명(우리 군은 6명 사망에 18명 부상)으로 추정됐다. 북한은 군의 사기 저하를 우려해 사상자 정보에 대해 철저히 비밀에 부칠 것이다. 지고도 이겼다고 선전할 게 뻔하다.”

글=이영종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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