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검증 미흡한 개각 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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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뉴스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시각과 관행으로 구성된 현실이란 점에서 '올바른 현실구성' 에 대한 언론의 책임은 실로 크다.

이런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기자들은 열심히 현장을 뛰어다니며 생생한 뉴스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우리 언론은 힘들게 발로 뛰는 대신 정보원(흔히 정부당국자들)의 발표에 의존하는 '발표 저널리즘' 에 길들여져 왔다.

지난주 가장 큰 뉴스였던 개각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서 아직까지도 언론이 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13 개각 며칠 전부터 온갖 추측기사로 상당부분의 지면을 채우더니 막상 개각이 있은 후에는 개각에 관한 기사가 별로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개각기사들을 보면 사람이름만 바뀌었을 뿐 기사형식.내용 등은 복사한 것처럼 매번 비슷했다.

대상자들의 어색한 얼굴사진과 화려한 프로필 소개, 그리고 호의적이고 가벼운 스케치 등 거의 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보도해온 것이다.

관련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망이 더 크다.

중앙일보의 14일자 3면을 보면 " '개혁형 전문가' 대거 실전배치" "철의 사나이서 디지털 총리로" 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청와대가 신임장관들을 개혁형 전문가라고 발표하자 언론은 거부감 없이 그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개혁형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적합한 것인지, 그들의 개혁성향을 뒷받침할 업적이나 경력이 있는지 중앙일보는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또 총리 본인이 자신을 디지털 총리라고 자칭하자 헤드라인에까지 그대로 디지털 총리로 묘사하는 충성심을 보여줬다.

기사 내용은 더 황당하다.

신임총리가 인터넷 황제 손정의와 의기투합한 사이며, 빌 게이츠와 교분을 맺었고 , 앨 고어 미국 부통령도 잘 안다는 등 자칭 디지털 총리를 지지하는 내용들이 열거됐다.

또 다른 일간지에서는 이헌재 재경부 장관을 소개하는 기사에 한국경제의 '해결사' 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기사내용을 보면 한 술 더 떠 준비된 해결사라느니, 난세가 낳은 스타라는 진부한 표현들이 나온다.

문제는 바로 이런 아부성 기사들 때문에 정치적 냉소주의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개혁형 전문가' 들을 대거 실전배치했다는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독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73세의 노(老)정객을 디지털 총리로 부르는 데 대해 공감하겠는가.

대다수 독자, 특히 젊은 디지털 세대 독자들은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디지털 총리 밑에 경제해결사, 그리고 개혁형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인가.

개각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현실을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구성하는 언론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까다로운 국회 청문회를 통한 고위 공직자 인준과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에 대한 언론의 공정한 검증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아무리 저녁 늦게 발표된 개각일지라도 거론된 인사들에 대한 치밀한 자료를 미리 챙겨놓았어야 했다.

즉 그들이 과연 전문성에 있어 적절한 사람인가, 경력이나 업적에 있어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은 무엇인가 등을 미리 철저히 취재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또 개각의 의미에 대해서도 좀더 깊이있는 해설과 논평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뒷받침이 부족하다보니 발표 저널리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판에 박은 프로필과 가벼운 스케치로 지면을 채우게 됐고, 그 결과 언론과 정치에 대한 불신만을 키우지 않았나 우려된다.

물론 출입처 기자들은 신임총리나 장관과의 허니문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처음엔 호의적인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관행이 자칫하면 도를 넘는 권언유착(權言癒着)으로 발전하게 되며, 발표 저널리즘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최선열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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