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대입 논술] 서강대 문제-예시답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출제 의도>

고통과 역경에 처한 인간의 사고와 행동' 을 주제로 하였다.

인간은 때때로 극복하기 어려운 고통과 역경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A 카뮈의 소설 '페스트' 에는 페스트로 인한 재난의 상황에서 고통받는 오랑시 주민들의 사고와 행동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기자 랑베르.신부 파늘루.의사 리유 등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서로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그러나 각각 다른 입장과 역할 때문에 누구의 태도가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여기에는 우리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포괄적으로 반영되게 마련이다.

이번에 출제한 논술 문제는 제시문을 통해 이러한 입장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서술한 다음 그 중에서 어느 입장이 자기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설득력있게 논술할 것을 일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입장들이 서로 양립할 뿐만 아니라 보완될 수도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수험생들 각자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스스로 점검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아상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시 답안>

새 천년을 맞아 희망적인 미래 기획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전망의 이면에서 제기되는 부정적인 예측도 없지 않다. 환경오염이나 핵무기의 위협 등 위기 증폭 요인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희망찬 미래가 돌연 존재 파멸의 상황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주목된다.

그런 면에서 제시된 '페스트' 사태는 비록 20세기 중반에 제기된 것이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의식을 제공한다.

제시문 (A)는 페스트 재난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여준다.

이어진 세 제시문에는 이에 대처하는 세 인물의 사고와 행동 양태가 나타난다.

(가)에서 취재차 잠시 들렀던 기자 랑베르는 개인의 가치와 행복을 중시하는 인물로, 이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처하기보다 빨리 탈출하기를 바란다.

이방인인 랑베르와 달리 오랑시의 주민인 신부 파늘루(나)나 의사 리유(다)는 고통스러운 현실 안에서 각각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한다.

그 과정에서 두 인물의 의식과 태도는 대조된다.

파늘루 신부는 구체적인 고통의 현상보다 그 근본적 원인이나 의미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보기에 페스트 사태는 인간에게 내린 처벌의 수단이자 '생명의 원천' 인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한 장치다.

따라서 그는 하느님의 '말씀' 을 준엄하게 전하며 회개와 반성을 촉구한다.

초월주의자의 모습이다.

이에 반해 의사 리유는 구체적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

그는 일련의 죽음의 현상에서 신의 질서가 부조리함을 체험한 인물이다.

신을 믿지 않는 리유는 죽음의 현실에 반항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선택하고 실천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상적이고 초월적인 가치나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고통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다.

위의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입장과 의식으로 고통스러운 위기상황에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느 한 입장에서 다른 입장들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신부나 의사는 각각 그 역할이 다르다.

또 취재를 위해 잠시 들른 외지인 기자와 내부인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

여기서 좀더 전면적인 시선으로 종합적 인식의 지평을 열 수 있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세 인물의 특성은 한 존재 안의 서로 다른 자아의 측면들일 수 있다.

랑베르처럼 본성에 입각해 나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발산하고 싶은 자아도 있고, 리유처럼 남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현실적 자아가 있는가 하면, 파늘루처럼 이상적 가치에 헌신하기 위한 자아도 있다.

이런 다양한 가치들은 각자의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상충될 수도,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아주 어렵고 드문 경우이긴 하겠지만 그것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우리는 '전인적 인격' 에 가까이 갈 수 있다.

다른 의식과 태도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정한 종합의 지평이 바람직하다.

이때 타자들과의 상호작용은 물론 내부 자아들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해진다.

나와 남, 주체와 대상, 개인과 집단, 인성과 신성간의 진정한 대화적 인식을 통해 개인적으로 전인적 인격을 도모할 수 있음은 물론 남이나 사회에 헌신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깊고 넓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인생관이다.

깊고 넓게 사고할 때 전면적 현실인식이 가능해지고 고통과 역경에 대처하는 진정한 행동방식을 알게 된다.

새 천년의 희망찬 구상의 이면에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부정적 징후들로부터 실제로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면적 성찰과 실천을 위한 고통의 인식 여정에 지혜롭게 동참할 필요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