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패냐, 수상전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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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32강전> ○ 박정환 4단 ● 천야오예 9단

제14보(133~135)=흑이 어찌 달아날까, 흑도 만만치 않구나 싶을 때 133이 등장했다.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밀고 들어오는 수. 묘수였다. 초읽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숨가쁜 실전 상태에선 더욱 생각하기 힘든 역발상의 묘수였다.

한국 기사들이 가득 모인 검토실에선 아! 하는 탄식이 나지막하게 터져 나온다. 이런 수가 있다는 게 불행이지만 예측은 하고 있었다. 실전이 하도 험악해 혹 빗나갈까 기대했을 뿐이었다. 사실은 박정환 4단도 저 앞에서부터 이 수를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어둡고 지쳐 보인 이유였다.

‘참고도1’ 흑1을 선수한 뒤 3으로 나와 끊는 것은 수상전에서 흑이 수 부족이다. 그러나 133으로 먼저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참고도2’ 백1로 막을 때 흑2로 끊으면 이건 백이 수 부족이다. 134는 어쩔 수 없는 후퇴였고 흑은 비로소 135를 둔다. 천야오예 9단의 수순이 정확하게 맥을 짚고 있다. 백은 두 갈래 길. A로 끊느냐, B로 잇느냐 뿐이다. A로 끊으면 패가 되고 B로 이으면 수상전이다. 패는 백이 지옥이다. 수상전이 최선인데 그 수상전이 하도 미묘해 눈 앞이 아른거릴 뿐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박정환의 얼굴을 보면 벌써 오래전에 그 답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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