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두만강아 너 우리의 강아'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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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는 죄인 처럼 수그리고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너의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조그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았다

아무 것두 바라볼 수 없다만

너의 가슴은 얼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다

다른 한 줄 너의 흐름이 쉬지 않고

바다로 가야 할 곳으로 흘러내리고 있음을

- 이용악(李庸岳.1914~?) '두만강아 너 우리의 강아' 중

국토의 분단은 우리의 시를 반 세기 가깝게 갈라놓았다.

정지용.김기림.오장환.백석…, 그런 이름들과 함께 '전라도 가시내' '오랑캐꽃' 을 쓴 이용악의 이름도 오랫동안 햇볕을 볼 수 없었다.

얼어붙은 두만강을 기차로 건너면서 나라를 빼앗긴 젊은 시인은 죄인인 듯 고개를 수그려야 했다.

그러나 시인의 가슴 속에도 더운 피가 흐르듯 수면은 얼었어도 안으로는 흘러 '가야할 곳' 으로 가는 두만강물에 이르고야 말 광복의 그 날을 이 시는 예언하고 있다.

이근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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