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로 맞추자] 전문가진단 "올해 경제 이것이 복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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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구조개혁을 체질화하고 물가불안 요인을 제거하라. " 경제전문가들은 올해 한국 경제의 최우선 과제로 이 두가지를 꼽는다. 빠른 경기상승과 선거로 경제주체들의 구조개혁 의지가 흐려지고, 인플레 압력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증시동향과 금리인상 등 해외 돌발변수에 대비하는 것도 숙제라고 말한다.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올해 한국경제의 과제를 들어봤다.

◇ 지속적인 구조개혁〓모두들 빼놓지 않고 꼽은 과제다. 전문가들은 구조개혁이란 말이 경제 각 주체들의 일상적인 활동에 뿌리내리지 못할 경우 지난 2년간 IMF관리체제의 극복을 위해 들인 노력과 경기회생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재경부 이근경 차관보는 "지난해까지의 구조개혁이 주로 법과 제도를 바꾸는 하드웨어에 관한 것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일상 관행으로 자리잡게 하는 소프트웨어적인 개혁이 계속돼야 한다" 며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시장경제질서가 작동해야 금융이나 기업이 다시 부실의 늪에 빠지지 않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는 특히 선거가 실시돼 노동계 등의 제몫찾기 요구가 거세지고, 재계도 과거 경영패턴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많이 받게될 것" 이라며 "다시금 고통을 나누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조윤제(趙潤濟)서강대 교수도 "98년 이후 구조개혁을 위해 여러 제도가 도입됐지만 관건은 실천" 이라며 "기업회계의 투명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재무구조 건실화 등이 차질없이 이행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 물가안정〓거시 경제의 핵심변수로는 단연 물가가 꼽혔다. 아직 물가불안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안주했다가는 안정된 성장을 기약하기 힘들 것이라는 경고가 많았다.

한국은행의 박재준(朴載俊)이사는 "물가불안 없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디플레 갭' 이 거의 해소된 것으로 판단된다" 며 "아직 손을 쓸 단계는 아니지만 하반기이후 물가추이를 예의주시하며 정책 대응을 준비할 생각" 이라고 밝혔다.

HSBC증권의 이정자(李姃子)지점장은 "올해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내년이후 물가는 다시 5%대로 오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고 진단하고 "통화당국은 이른 시일 안에 단기 정책금리를 올리고 원화가치도 시장에 맡겨 절상시켜야 한다" 고 강조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채창균(蔡昌均)연구위원도 "다시 고물가 시대로 돌아가면 서민들의 생활고는 물론이고 기업들의 대외경쟁력도 크게 훼손될 것" 이라고 우려했다.

◇ 대외여건 변화에 대비〓지난해 경제가 기대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외 경제여건이 크게 호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곧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그만큼 크다는 취약점을 뜻하는 말이기도 해 해외의 돌발변수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원암(朴元巖)홍익대 교수는 "지난해는 엔고의 덕을 톡톡히 봤지만 엔화는 워낙 변동폭이 큰 통화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며 "88년 엔고때 현실에만 안주해 정책대응에 실패했던 경험을 되새겨야 할 것" 이라고 충고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洪淳英)연구위원은 "미국 경기가 언제까지 호황을 지속할지 의문" 이라며 "자칫 미국의 주가가 떨어지고 금리가 오르면 세계증시는 동반 폭락하게 되고 국내 금융시장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고 경고했다.

◇ 금융시스템 정상화〓금융시장을 조속히 정상화하지 않고는 실물경제의 성장도 한계에 부닥칠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연구위원은 "채권시장안정기금을 동원한 금리억제책 때문에 채권시장이 마비되고 부실기업들을 계속 살려두면서 은행부실도 다시 커지고 있다" 고 지적했다.

정운찬(鄭雲燦)서울대 교수도 "금융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금융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 이라고 주문했다.

◇ 기타 과제〓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소외계층 복지대책을 강화하고,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고부가가치 산업쪽으로 유도하며,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지속하기 위한 방안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광기.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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