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오너 박용오 전 회장, 두산 회장직 물러난 뒤 잇단 스트레스에 시달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두산 그룹의 박용오(72·현 성지건설 회장·사진) 전 회장은 잇따른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주변인사들은 보고 있다. 한동안 칩거하다가 지난해 성지건설을 인수해 의욕적으로 경영에 다시 나섰지만 여의치 않아 많이 괴로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 박두병 회장(창업주 고 박승직의 아들)의 둘째 아들인 그는 뉴욕대 상대를 졸업하고 1974년 두산산업·동양맥주 전무이사를 맡으며 경영에 참여했다. 두산산업 사장, OB베어스 사장, 두산그룹 부회장을 역임한 뒤 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두산은 73년 박두병 회장이 작고한 뒤 장남(박용곤), 차남(박용오), 삼남(박용성)이 차례로 그룹 경영을 맡는 형제 경영의 전통이 있었다. 현재는 4남 박용현 회장 체제다. 박 전 회장이 경영을 맡았을 당시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한·스페인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등 왕성한 대외 활동을 했다.

하지만 2005년 7월에 형제들과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동생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추대되자 이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고인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고 한다. 박 전 회장은 한동안 칩거 생활을 하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지난해 8월에는 차남(박중원·41)이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뒤이어 9월에는 어머니 명계춘 여사까지 타계했다. 고인은 생전에 구치소에 있는 아들을 안타까워하며 형집행정지를 해달라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안 돼 좌절감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4일 부친의 장례식를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며 중원씨가 낸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13일을 기한으로 석방했다.

박 전 회장이 막판에 열정을 보였던 성지건설은 인천문학경기장을 지은 건축·토목회사다. 비교적 사업 구조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올 상반기 4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경찰은 4일 박 전 회장의 침대 옆 작은 박스에서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는 흰색 편지봉투에 밀봉된 상태로 들어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회사 부채가 너무 많아 경영이 어렵다. 채권·채무관계를 잘 정리해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 자택의 경비업체 직원은 "방에 쓰러져 있는 박 회장의 코에 손을 대보니 숨결이 느껴져 급히 병원으로 옮겼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6일 오전 10시. 고인은 경기도 광주시 탄벌리 선영에 있는 부인 고 최금숙 여사의 옆에 합장된다.

염태정·황정일 기자

→ 조인스 CEO섹션 'CEO Tribune'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