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인천시 남동구 만수5동 이대영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 11월 30일 '실직' 이라는 것을 했다.

빌딩의 경비책임자로 근무한지 햇수로 8년됐으나 끝내 IMF체제 여파를 버텨내지 못했다.

형편상 한 사람을 줄여야 한다는 일방적인 '선고' . 다들 나보다 어려운 형편이라 내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내일모레면 일흔이니 나이 많은 내가 젊은 사람들 대신 물러나야지….

일을 놓고 집에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는 "이제 좋아하는 시조나 쓰면서 편안히 지내라" 며 위로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걱정이었다.

아내와 단둘이 남은 상황에서 이제는 별 수없이 '시조시인' 으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요새 세상에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늙고 기운없는 아내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는 처지다.

그 흔한 외식한번 못시켜준 아내는 '짠순이' 로 소문날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

난치병이라는 버거운 짐을 지고 정말로 무섭게 살았다.

그런 아내에게 기댈 생각을 하니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어제였다.

빠질 수 없는 문학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던 중이었다.

저고리 안주머니의 느낌이 이상했다.

도톰한 봉투가 만져졌다.

봉투속에는 1백만원이 입금된 예금통장과 내 이름이 새겨진 도장, 그리고 아내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당신은 문인이세요. 기죽을 필요 없어요. 남들 앞에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런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이 통장은 언젠가 닥칠 날을 대비해서 푼푼히 모아둔 거에요. 요긴하게 쓰세요. "

코끝이 시큰했다.

눈물이 났다.

호강은 커녕 죽도록 고생만 시킨 아내인데….

일자리 잃은 남편을 원망할까 조바심 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비할데 없이 통이 큰 '짠순이' 의 눈물겨운 순정이 기어코 나를 울리고 말았다.

이런 아내가 내 옆에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고 무엇이 두려우랴.

사랑하는 내 '백년 친구' 와 오래 오래 '삶의 기쁨' 을 같이하고 싶다.

인천시 남동구 만수5동 이대영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