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진상규명법 처리 싸고 여야 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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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친일진상규명법이 발효되기까지 불과 17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마치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보인다. 당장 6일 열리는 행정자치위부터 소란할 것 같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한 개정안을 상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기국회 쟁점 1호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대표는 5일 "법의 발효 전에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라며 "여야 합의가 안 되면 민주적 절차에 따라 표결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야당의 지도자나 특정인을 겨냥한 개정"이라며 "정당한 토론 없이 수로 밀어붙인다면 온몸을 던져 막겠다"고 맞받아쳤다.

이렇듯 수면 위로 드러난 양당의 입장은 분명하다. 열린우리당은 무슨 일이 있어도 23일까지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원기 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앞으로 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언론관계법 등 첨예한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과반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다.

한나라당은 "시행도 안 해보고 법을 고칠 순 없다"며 강하게 맞선다. 육탄저지(심재철)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엔 다른 흐름이 있다. 열린우리당으로선 법사위 통과를 자신하기 어렵다. 최연희 위원장이 한나라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김 의장의 도움을 받아 강행 처리할 순 있지만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급한 민생법안 처리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도 고민이 깊기는 마찬가지다. 임태희 대변인은 "여당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도 시행해 보고 보완하자는 것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고 개인 자격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한 고위 관계자도 "언제까지 우리가 과거사 규명을 외면하는 정당으로 비춰져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실제 당내에선 한나라당 자체 개정안을 마련, 본회의에서 맞붙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조사 대상을 신분이나 지위가 아닌 친일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로 정하고, 전문적인 민간 독립기구에서 조사를 담당하도록 하는 방향이다. 당내에선 이 법안대로 확정되면 여당의 차기 주자군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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