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루이 17세의 DNA 검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치의 압박을 피해 곳곳을 전전하다가 1942년 브라질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한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20세기 최고의 전기(傳記)작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마리 앙투아네트' 는 특히 유명하다.

오스트리아의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태어나, 후에 루이16세가 되는 프랑스 황태자와 1770년 결혼해 왕비가 되는 앙투아네트의 일대기다.

결혼 당시 앙투아네트는 15세, 황태자는 16세였고 그녀가 19세였을 때 20세의 남편은 왕위에 올랐다.

앙투아네트에 대해서는 전해 내려오는 일화들이 수없이 많지만 츠바이크의 전기만큼 흥미롭고 사실적인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작가와 그 주인공이 똑같은 오스트리아 사람이기 때문에 작가가 그녀에 대해 동정적이었으리라는 견해도 있기는 하다.

어쨌거나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루이16세가 성불구자였다는 점이다.

반면 앙투아네트는 특출한 미녀인데다 성욕이 강했기 때문에 남편이 그녀의 사치와 음행(淫行)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츠바이크는 그 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을 들춰낸다.

루이16세는 결혼 후 7년 동안 아내에게 손가락 한번 대지 않은 채 방치했다가 그녀가 성에 눈뜰 무렵부터는 잠자리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곤 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밤마다 거리의 미남미녀들을 침실로 불러들여 쾌락을 즐겼다고 츠바이크는 기록하고 있다.

그녀와 관계했다는 34명의 남녀 이름이 적힌 쪽지가 공공연히 나돌았고, 그녀는 아비가 누구인 줄 알 수 없는 자식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 뒤의 일은 정사(正史)에 기록돼 있는 바와 같다.

혁명과 함께 루이16세와 앙투아네트는 1793년 차례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앙투아네트의 둘째 아들이 왕당파의 필요에 따라 루이17세로 허수아비 왕의 자리에 올랐다.

루이17세는 즉위한 지 얼마 안돼 탕플탑에서 의문사하지만 역사에는 그가 루이16세와 앙투아네트의 자식으로 기록돼 있고, 츠바이크의 전기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루이17세의 가짜설은 루이16세의 아들 여부가 아니라 부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3의 인물일 가능성이다.

해서 최근 프랑스의 유전학자들은 루이17세의 시신에서 추출한 세포와 앙투아네트의 머리카락 성분을 비교하는 유전자(DNA)검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 검사에서 루이16세는 왜 빠졌는지 알 수 없지만 모자관계만 확인하려는 게 이상하다.

앙투아네트의 자식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