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전처 성혜림 언니인 혜랑씨 유럽생활·사진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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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96년 1월 모스크바를 탈출, 서방세계로 잠적했던 성혜랑(成蕙琅.63)씨의 근황과 사진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成씨는 잠적한 이후 유럽의 한 국가에서 숨어지내며 월북.납북 인사들의 북한 행적을 담은 원고를 집필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成씨는 북한 김정일(金正日)의 전처인 성혜림(成蕙琳)씨의 언니이자 97년 2월 괴한에게 살해된 李한영(당시 36세.본명 이일남)씨의 어머니다.

'여성중앙21' 은 23일 시중에 배포할 1월호를 통해 成씨의 사진.서신.원고, 그리고 成씨의 딸 李남옥(33)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여성중앙 관계자들은 지난 9월 유럽 모처에서 李씨를 만나 월북.납북 인사 2백20명의 북한 생활을 담은 원고, 成씨의 서신 2건과 사진 2장 등을 건네받았다.

하지만 成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成씨는 집필 취지를 담은 A4용지 한장 분량의 서신을 통해 "탈북 이후 이산가족의 아픔을 알게 돼 남한의 이산가족들에게 월북.납북 인사의 소식을 알리려고 원고를 썼다" 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도적인 이유로 엮은 책자가 남쪽이나 북쪽의 그 어떤 정치적 자료로도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 밝혔다.

그는 아들 한영씨의 사망과 관련된 메모형태의 또다른 서신에서 "97년 2월 황장엽(黃長燁)씨의 망명 이후 (북측이)남에 5만의 간첩이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기 위한 사격이었나, (남한측이)한보사태를 안보사태로 돌리기 위한 시나리오였나" 라며 살해 배후로 남북한 모두를 의심했다.

그는 또 "아들의 두개골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도 아니었으면 했다.

아들을 찾아 문턱까지 왔는데 그 애는 가고 없다" 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成씨가 집필한 월북.납북 인사들에 관한 원고에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부친 조헌영▶조선말 학부대신 한규설의 서손녀 한만영 ▶김옥균의 조카 김태진▶지리산 유격대장 이현상의 가족▶북한 핵의 이론적 기초를 다진 핵물리학자 정근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성중앙측은 이를 정리, 출판사 지식나라를 통해 1백여쪽 분량의 단행본 '소식을 전합니다' 를

출간할 계획이다.

成씨의 딸 남옥씨는 여성중앙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유럽의 한 국가에 정착, 어머니와 살고 있으며 최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고 소개했다.

그는 또 "이모 성혜림씨는 어머니와 함께 탈북하지 않았으며, 현재 모스크바나 북한에 살고 있다" 며 "96년 일부 언론의 탈북 보도는 명백한 오보" 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 생활을 정리한 자서전을 쓰려고 했으나 사정상 중단했다" 며 "어머니가 북한판 '토지' 를 쓰고 있다는 보도는 잘못된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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