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눈 가리고 아웅' 자체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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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방공무원들의 비리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굳이 통계 숫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비리로 적발되는 공무원수가 95년 민선자치 시대가 열린 이후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대전시청과 충남도청에서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같은 시각을 뒷받침하는 좋은 사례다.

대전시에서는 6급 직원 李모(51)씨가 지난해 중소기업 육성자금 15억6천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17일 검찰에 구속됐다. 그런데 李씨의 비리는 감사원이 지난달 대전시에 대한 일제 감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자체 감사부서를 두고 매년 수 차례씩 감사를 벌이고 있는 대전시는 그동안 이같은 비리 사실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제가 불거지자 감사 책임자가 기자실을 방문해 "실무자의 업무 착오로 사고가 발생했을 뿐 상급 공무원들의 책임은 없다" 고 변명한 게 전부다.

충남도의 경우 최근 행정자치부 등 11개 중앙부처가 벌인 합동감사에서 비리 공무원 85명이 무더기로 적발돼 징계 및 훈계 처분을 받은 것과 함께 총 75억8천여만원을 추징당했다.

특히 도청 산하 모연구원장의 경우 지난 10월 소속 연구원이 폐수 시료(試料)를 조작한 사실이 한 네티즌의 인터넷 홈페이지 고발로 드러났음에도 형사 고발토록 돼 있는 관련 규정을 어기고 '의원 면직' 처리했다가 징계 처분을 받았다.

충남도 역시 대전시와 마찬가지로 매년 연례행사처럼 자체 감사를 벌이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완전한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은 그동안 '중복 감사' 에 불만을 떠뜨려 왔다.

자체 감사를 통해 '스스로' 정화해 나가는데 중앙부처나 감사원 감사 등이 왜 필요하냐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이들의 주장처럼 중앙정부의 간섭이 불필요하다면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은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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