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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플루보다 공포심 확산이 더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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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우리 집 큰아이가 신종 플루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 작은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등교를 못 하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신종 플루 공포감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심하다. 올해 10월 중순 미국 공항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더라.”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신종 플루가 최근 급격히 확산하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신문사에도 신종 플루에 관한 제보와 문의가 하루 5~6건씩 들어온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신규 발생 환자가 1만 명을 넘어선 데다 기온마저 급강하해 신종 플루가 대유행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는 독감의 일반적 특성상 신종 플루 확산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는데도 전염 속도가 이처럼 빠른 것은 큰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질병도 그렇지만 불안감 내지는 공포감도 문제다. 인터넷이나 일부 언론에선 잘못된 정보가 떠돌아다녀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얼마 전엔 인터넷에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린 고등학생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막연한 불안감이 혼란을 키우면서 사회 곳곳에서 과잉 대응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인천에 사는 독자 김양미씨는 “한 고등학교에서 신종 플루에 걸렸다 완치된 학생에게 신종 플루에 걸리지 않았다는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다”며 “신종 플루 증상이 없어졌는데 무슨 확인서가 필요하냐”고 말했다. 학교뿐 아니라 학원도 감염 위험지대에 놓여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자 교습소 등 소형 학원들은 “대형 학원과 달리 소형 학원에선 같은 동네의 학생들이 공부하기 때문에 누가 감염됐는지 다 알아 발병한 학생이 오면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수 없다. 만약 신종 플루가 돈다는 소문이 나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할 뿐 아니라 회복 후에도 상당 기간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번 보도로 멀쩡한 교습소 여러 곳이 문을 닫게 생겼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각급 학교의 휴교령도 논란을 빚고 있다. 딸이 고등학생인 한 독자는 “휴교를 한다고 해도 감염자 수는 크게 줄지 않을 것이며 다른 감염 사각지대에서 옮는 경우가 많은 만큼 무작정 휴교보다는 선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언론의 중계방송식 보도가 불안감 확산을 거든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언론에서 하루 감염 환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섰고 전체 누계가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 수치들은 물론 누계 개념이다. 실제로 신종 플루를 앓고 있는 환자가 그만큼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 10만 명 중에는 치료를 받아 정상인으로 돌아간 경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완치 환자를 감안하지 않은 수치란 이야기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독자 송기원씨는 “이런 보도는 은연중에 공포심을 키우니 언론이 올바른 표현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잠원동의 김종국 독자는 “신종 플루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보도하면 이 병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해왔다.

불안감이나 공포심은 스트레스로 작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되레 신종 플루 창궐을 도와준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과소 대응도 나쁘지만 과잉 대응도 결코 좋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겨울이 오고 건조해지면 바이러스의 활동력은 더욱 강해진다고 한다. 신종 플루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되 막연한 불안감보다는 병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대응하고 ‘공포’를 관리하는 자세가 중요한 시기다.  

서명수 고충처리인